한국일보

고통의 극복

2020-03-09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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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친은 냉수마찰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추운 겨울 새벽에도 윗도리를 벗어젖히고 냉수 마찰을 하며 “참 추운 맛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미국에서 운전하면 가끔 Detour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도로공사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돌아가라는 뜻이다. 돌아가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돌아가야 더 빨리 갈 수 있다. 고통의 길이 절망은 아니다. 단지 돌아가는 것 뿐이다.

야외예배가 계획된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교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사님, 비가 멈출까요?” 신학교에서 기상학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깊은 뜻으로 대답하였다. “비는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기다림이란 넓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한 가지에 붙잡혀 있지 말고 언제나 가른 길(alternative)도 있다는 여유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바이올린의 음색은 나무의 질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가장 좋은 소리는 고산지대의 목재에서 나온다. 미국의 경우 해발 1만2,000피트인 로키산에서 바이올린의 목재를 얻는다. 그곳은 바람이 심하여 가지들이 한 방향으로 자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추위와 바람으로 단련한 나무이기 때문에 좋은 소리를 낸다.

새는 나는 것이 특색이다. 그러나 날지 않는 새도 있다. 뉴질랜드에 사는 키위나 펭긴은 날지 않는다. 그들은 걸어만 다녀도 먹이를 충분히 구할 수 있으므로 날 필요가 없어 오랜 진화과정에서 날지 못하는 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다. 모진 북풍이 강한 바이킹과 그들의 조선술을 개발시켰다.


인류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기술 향상면에서 추운 나라들이 따뜻한 나라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두 개의 독약을 먹고 산다. 나트륨(Na)와 염소(Cl)이다. 그러나 이 두 독약을 합치면 염화나트륨(Nacl), 즉 소금이 된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는데 소금은 두 독약이 손을 잡았을 때 생기는 결과인 것이다. 성경에는 평탄하게 산 사람의 이야기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는다. 설경의 인물들은 모두가 고통을 통과한 사람들의 싸움의 기록들이다.

성경이야기들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다. 첫째, 어떤 일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즉 하나님의 역사는 믿는 자들의 고통을 통하여 탄생하였다는 사실. 둘째,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긴 세월이 소요된다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을 탈출하여 팔레스타인까지 가는 길은 한 달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40년이란 오랜 고통의 과정을 걷게 한 것은 신앙훈련의 세월이었다. 셋째, 믿는 자들도 환난(damage)을 많이 겪는데 인내심이 부족할수록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 넷째, 도망치면 결과는 더 악화된다는 사실. 요나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마지막으로 고통문제에 대한 성경의 결론은 언제나 믿음의 모험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통은 양심을 일깨워준다. 발전이 있다면 반드시 그 배후에는 고통받은 사람들의 땀이 있었다. 고통 없는 승리는 없고, 환난을 통과하지 않은 영광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 속에서 도자기를 구으면 색깔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 단련된 인격은 변함이 없다. 당황하고 겁먹은 코끼리는 개구리에게도 걷어차인다는 힌두 속담이 있다.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인격은 나약하다. 환난이 사람을 부자로 만들지는 못해도 현명한 인간으로는 만든다.

갑자기 얻어지는 소위 행운은 나중에 쓸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고통은 인생의 훈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자비한 것 같아도 팽이는 때려야 돈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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