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는 왜 날아야하는가

2020-03-06 (금)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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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가족’
-아버지 송지호에서 쉬었다 가요. /-시베리아는 멀다.
-아버지, 우리는 왜 이렇게 날아야 해요?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이상국의 시집 ‘어느 농사군의 별에서’ 중에서)

“그런 소리 말아라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 것들이 많단다.” 무슨 말인가. 정체성이다. 날개 짓을 멈추는 순간 기러기의 정체성은 소멸되고 만다는 뜻이다. 정체성의 위기를 만나면 날개가 있어도 새는 날지 않는다.

인디안 소년이 산속에서 독수리 알 하나를 얻었다. 그 알을 집 닭장에 넣었다. 그 알을 품은 암탉 날개에서 독수리 새끼가 부화 되었다. 병아리와 함께 태어난 독수리 새끼는 자신이 병아리인줄 알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풀섶을 뒤지며 벌레를 잡아먹었고 물가에서 놀았다. 큰 날개가 돋아도 독수리 새끼는 병아리처럼 종종 걸음을 치며 돌아다녔다. 정체성의 혼란이 온 것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어느 날이다. 장엄한 모습을 한 큰 새가 하루종일 하늘을 맴돌았다. 친구들은 그 장엄한 새를 보자 말자 혼비백산, 자취도 없이 숲속으로 숨었다. 새끼 독수리는 무섭지 않았고 숨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장엄한 새가 하루 종일 새끼 독수리를 응시하며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그 독수리가 “나는 너의 아버지다. 네 모습을 자세히 보아라. 너는 병아리가 아니고 나와 같은 독수리다.”라고 부르는 듯하였다.

새끼 독수리는 두 날개를 활짝 펴 보았다. 자신의 날개도 하늘의 독수리와 같은 황금색이었다. 새끼 독수리는 두 다리로 땅을 힘차게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아버지 독수리와 함께 깊은 숲으로 갔다.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정체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택하는 것이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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