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96) 제43대 George Walker Bush 대통령(2)

2020-03-02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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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W. Bush 대통령은 2001년 1월에 대통령에 취임한후 같은해 9월 11일에 Saudi Arabia 의 terrorist 들이 미국 민간여객기들을 납치하여 World Trade Center Twin Towers 와 Pentagon 국방부 건물에 강제 추락시켜서 Twin Towers 는 완파, Pentagon 은 부분적 으로 폭파되고 수천명의 사상자가 나는 참사를 당하게 된다. 같은날 백악관 폭파를 위해서 납치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여객기 한대는 Washington 으로 가던 도중 승객들과 terrorist 들과의 격투끝에 Pennsylvania 의 들판에 추락 되었었다. Bush 43 의 대중동 강경정책이 시작되고 미국의 응징은 피할수 없는 일이 되었었다. 미국과 Islam 국가들과의 적대관계는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었다.
2000년 대통령선거때의 민주, 공화 양당간의 격렬한 선거투쟁으로 국론은 분열 되었 으며 Bush 43의 타협없는 주장들은 양당간의 불화가 매우 심각해지도록 하였었다.
Bush 43의 정강들은 전형적으로 “공화당적”이었었다. 거의 모든 선거때마다 공화당은 대기업들과 부유층 사람들에게 주로 혜택이 가는 소득세 감소와 세법의 개정, 국방비의 증액과 사회복지 예산의 감소, 수입예산의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와 그에따라 불가피 해지는 국가채무의 증대, 중하층 국민들의 국채부담 증대가 뒤따르게 된다. 국민다수의 보호를 위해서 입법된 제반 기업규제 제도는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 대폭 철폐 해야만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 특정 산업분야에 정부가 과감한 투자나 융자를 해야하며 특정 기업들에게는 세제상의 특혜도 과감하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활동 원동력인 석유의 국내조달을 증산하기 위하여 환경문제에 다소 공해가 있는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석유 매장량이 엄청난 중동국가들을 미국의 영향권 아래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Bush 43 은 9.11 WTC 폭격참사 직후 그가 미국민의 단결을 호소하고 그가 ”Islamic Terrorists” 를 보복응징 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표시하였을때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때도 있었으나 그는 재임 8년동안에 계속적인 재정, 경제정책의 실패로 퇴임할 무렵에는 국가부채가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경제는 1930년대의 “대공항” 이후 가장 나쁜 경기불황에 빠져서 지지율이 39%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였었다. 그의 여러가지 공과중 우선 재정, 경제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Bill Clinton 은 Bush 41 로 부터 극심한 불황속에 빠진 경제와 거대한 국가부채를 인계 받았었지만 그 자신의 대통령재임 8년동안에 국가부채를 많이 감소시키고 임기말 3년동안에는 매년 증대되는 재정흑자를 내오면서도 호황이된 미국경제를 Bush 43 에게 넘겨주었었다. Clinton 의 마지막 해인 2000년도에는 2천370억불의 재정흑자가 있었었고 Bush 43은 2001년에 앞으로 10년동안에 5조6천억불의 흑자가 있을수 있다고 예측하였었 다고 한다. Bush 43 은 취임한후 곧 “재정흑자는 국민의 것이지 정부의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면서 미국 사상 최고 액수인 1조3천5백억불의 소득세 인하를 감행하였으며 임기중에 수백만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률은 대폭 올라가고 극심한 불황에 빠진 경제를 후임 Barack Obama 에게 넘겨 주었다.


당시 Federal Reserve 의 Alan Greenspan 위원장은 이 거대한 감세가 불경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였으며 재무부장관도 예산적자가 증대되고 Social Security 에도 위험을 줄수 있다고 반대 하였었다고 한다.

2003년에 이르러 경제가 조금 좋아지기 시작하자 Bush 43은 또 한번 소규모의 소득세 인하를 하였었다. Bush 43 임기중의 경제성장은 그전보다 둔화되었었다. 그가 대통령에취임한 2001년에 Dow Jones Index 가 10,587 이었다가 2007년에는 14,000 을 넘기기도 하였으나 그가 퇴임한2008년말에는 7,946 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2001도의 실업률은 4.2% 이었는데 2003년에는 6.3% 이 되었다가 그의 퇴임시에는 7.2% 가 되었었 다고 한다. 그의 취임시의 국가채무 총액은 5조6천억불이었었는데 그의 퇴임시에는 11조3천7백억불이 되었었다고 한다.

Bush 43은 과학과 수학교육의 강화를 위한 지원금이 지출되도록 하였다. 그가 입법을 추진한 “No Child Left Behind Act” 가 2002년초에 입법되어 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에 연방정부가 지원하도록 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는 Medicare 의 drug benefit 가 인상되는것은 동의하였으나 6백만명 이상의 저소득층 청소년건강보험을 위한 “State Children’s Health Insurance Program” 의 입법에는 거부권을 행사하였었다.

Social Security 제도는 입법초기 부터 자본주의 제도에는 맞지않는다는 이념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제도가 미국의 공산화를 방지해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Social Security 제도는 입법당시 미리 충분히 예상하지 못하였던 여러가지의 중요한 문제들 때문에 제도의 집행에 곤란을 경험한적이 자주 있었었다.
Social Security 는 기금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부의 채권등 몇가지에만 “투자”를 할수 있도록 하였던 까닭에 투자소득이 극도로 제약된다는 결점이 있다. 일반 증권에서 얻을수 있는 투자소득이 평균 10%를 넘을 때에도 Social Security 는 1%, 2% 에 그치는 투자소득을 낼수밖에 없었다. Social Security 의 투자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신중론자들에 의하여 묵살되어 왔었다.

Bush 43 은 2005년의 년두교서에서 Social Security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는 Social Security 의 투자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Social Security 가 개혁되지 않으면 불과 수년후에 파산이 될수밖에 없음으로 가입자들이 자의대로 투자하는것을 허용하는privatized Social Security 제도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대론자들이 많았었는데 마침 그해에 일어난 Hurricane 의 피해로 Social Security 의 개혁은 큰 진전을 보지못하고 있다가 “다행하게도” 2006년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자 Social Security 개혁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못하였었다.

Bush 43 은 2006년에 Hawaii 의 서북쪽 8,400 acres 를 “The Papahanaumokuakea Marine National Monument” 라고 선언하고 최대의 해양 보호구역으로 만들었다. 이 구역에는 이 지역에서만 살고있는 7천여종의 물고기, 조류, 기타의 해양동물들이 있다고 한다. 자연보호주의자들은 Bush 43 의 이 선언을 먼 장래를 내다보는 Bush 의 지도력을 보여주는 쾌거라고 칭찬하였었다.

Bush 43 은 지구온난화가 사실인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지구의 온난화가 인류에 의해 일어나는 일인지 자연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과학계의 이론이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비판자들은 Bush 행정부가 국민들에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주고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서 충분한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Bush 43 은 부분적인 adult stem cell research 에는 찬성하지만 embryonic stem cell research 는 반대하였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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