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금은 하나가 될 때

2020-02-2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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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장개석이 대륙을 서로 차지하고자 싸울 때 일본군이 쳐들어오면 국공합작(國共合作)을 했다. 중국의 국부(國父) 손문은 1924년 제1차 국공합작을 앞두고 “나는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며 합작구호로 ‘타도 제국주의, 토벌 군벌’을 외쳤다. 상대는 일본이었다.

1925년 손문이 사망한 후 1927년 국공합작이 결렬되었고 다시 서로 싸우다가 일본군의 허베이 지방 침략이 노골화 되자 1937년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까지 다시 국공합작이 성립되었다.

조선에서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 운동은 중국의 국공합작에서 영향을 받은 민족 유일당 운동의 일환이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결집하여 신간회(新幹會)를 창설했다. 신간회는 1927년 2월부터 1931년 5월까지 전국 2만~4만명이 참여한 일제하 가장 규모가 큰 반일사회운동단체였다.


이렇게 일제하 식민지 시절에도 사상은 달라도 공동의 적인 일본을 향해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손을 잡았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적과도 손을 잡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가. 코로나19로 한국내는 물론 전세계가 꺼리는 나라가 될 위기에 있다. 온 나라가 속을 태우고 있는데도 불구, 여야는 아직도 정쟁을 계속 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환자가 확산 중인 와중에 우리의 적은 누구일까. 여야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서로 네탓이라며 싸우고 있다. 휘청거리는 쪽이나,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깎아내리는 쪽이나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정치인들이 서로 갈라져 있을 때 평범한 서민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마치 1997년 IMF 구제금융 외환이 닥치자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의 빚을 갚고자 국민들이 장롱에서 꺼내온 금을 자발적으로 내놓은 운동은 외환 부채 약 304억 달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 소박한 마음이었다. 1998년 1월5일부터 2월까지 사회 각계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모습은 나라 빚 갚기에 도움이 되었다 하기 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전 국민에게 주었었다.

이번에도 국민들이 먼저 걱정되고 울적한 마음을 추스르면서 하나의 마음이 되고 있다. 가장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있는 대구의 의료 인력이 절대 부족하자 전국에서 자원 의료진이 몰려들었다. 감염이 두렵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 따라 자원한 이, 부부가 아기를 부모에게 맡기고 온 이, 만삭의 아내를 두고 오는 이, 자신의 병원을 휴업하고 달려온 이 등등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수백명이 대구시 의료지원에 동참했다.

대구 및 서울의 상가 등 전국 각 지의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대폭 인하하고 있고 서민들은 동네 가게를 살리고자 식재료나 음식을 공동주문 하는 등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힘내라 대구’, ‘힘내라 대한민국’ 운동이 이뤄지고 있다.


대기업들의 성금, 구호물품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연예인들도 어려운 저소득층 취약계층을 위한 성금을 너도 나도 기부하고 있다. 그 외 차량 실내향균 무료 서비스 등 작은 중소기업이나 국민들은 스스로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코로나 19종식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정작 정치인들은 무얼 하는가? 일단 코로나19에서 나라부터 구하고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지게 하는 일은 나중에 하자.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 정의당 모두 솔선수범하여 서민의 고통을 달래주고 머리를 맞대어 경제 피해 최소화를 위한 방법을 찾아내기 바란다.

그리고 지금, 재외 한인들도 한국에서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코로나 청정지역임에도 불구 손님 없는 한인상가를 볼 때 타인종의 편견이라 탓하지 말고 한인들이 로칼 식당과 업소를 이용하자. 이는 아시안 인종차별의 불씨를 스스로 끄는 일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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