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스로 불 지르는 숲

2020-02-24 (월)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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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자들은 적정 규모의 자연발생적 산불은 과밀한 산림에 숨통을 터주고 참사를 일으키는 대규모의 산불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자연적 산불은 참나무, 왕솔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단단한 씨앗을 벗겨 동시적으로 발아시키는 일을 한다. 그래서 산림당국은 헬기를 동원하여 발화 캡슐을 떨어트려 의도적인 산불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로지폴소나무(Lodgepole Pine)는 숲이 늙으면 스스로 불을 질러 자신을 비운다. 숲을 태우면 숲 생태계는 정화을 이루고 갱신된다. 숲을 태울 때, 숲 안에 창궐하던 병균과 해충은 물론 천적인 소나무 풍뎅이까지 모두 사라진다. 로지폴소나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평균 10년 마다 스스로 불을 질러 자신을 개혁하고 있다.“
(이춘만의 ‘숲의 눈으로 본 우리사회’ 중에서)

- 안정된 환경의 오랜 지속은 숲 생태계에 이득이 못된다. 숲의 안정이 오래 보장되면 숲은 과밀화, 노후화 된다. 면역력도 떨어져 웬만한 병균과 해충의 공격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숲은 병든다. 결국은 자멸한다. 자기 방어 능력을 상실한 늙은 숲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생태계에도 해를 끼친다.


포도나무의 옛 가지에는 새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매년 봄이 되어 새로 나온 가지에만 열매가 맺힌다. 겨울 철 휴지기에 농부들은 포도원에 나와 치열하게 가지치기 한다. 가지치기를 많이 한 포도나무 일수록 이듬해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예수 앞에서 자신을 비우는 일에 투신했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한때 거대한 중국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은 말했다. “큰일을 하려면 세 가지를 가지치기해야 한다. 첫째 이름, 둘째 돈, 셋째는 나이.” 먼 거리를 여행하려면 가방 수를 줄여야 하듯, 인생의 숲을 견고하게 세우려면 노후화 된 숲을 스스로 불태우는 비움과 정화의 용기가 필요하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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