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화의 계절

2020-02-21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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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아카데미에서 한국영화 “기생충 (Parasite)”에게 4개의 오스카상을 안겨 주어 영화역사의 한 쪽을 새로 썼다. 전에 없던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사조와 이념의 흐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기생충”이란 영화를 보고나서 어떤 기준이나 가치로영화의 좋고 나쁜 것을 평가하는지, 영화 비평가들이 오스카상을 휩쓸 것으로 예상한 영화들은 왜 상을 받지 못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영화 비평가는 아니지만, 전공한 학문의 성격상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화의 역사나 영상예술을 감상하는 기초적인 소양과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샘 멘데즈 (Sam Mendez) 감독의 ‘1917’을 보려 갔다. 나름대로 ‘1917’과 작품상을 포함한 네 개의 오스카상을 받은 ‘기생충’을 비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917’은 어느 면에서 보아도 아주 잘 만든 영화였다. 멘데즈 감독은 할아버지로부터 어린시절 들었던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단편적 이야기를 각본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구도를 통해, 두 명의 영국 군인이 특정한 임무를 띠고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까지 적진을 통과하며 생사를 가늠하는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해 맡은 임무를 수행한 이야기가, 뛰어난 카메라의 움직임과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황폐한 전쟁터의 절망감은 왜 우리 인간은 그렇게 참혹한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지 묻게했다. 주인공 스코필드(Schofield) 상병이 나무에 기대앉은 첫 장면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외롭게 서 있는 한 나무에 기대앉아 피에 젖은 가족 사진을 꺼내보는 마지막 장면과 겹치는 치밀한 구성 또한 가슴에 와닿았다.


이 처음과 마지막 사이의 공간은 멘데즈 감독의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액션과 드라마들로 꽉차있다. 의무, 책임감, 용기, 희생, 영예, 인간애, 형제간의 우애, 희망 등등 전통적인 가치와 덕목들이 장면 장면 가슴 졸이는 스토리의 고비를 넘어갈 때마다 절망적인 어두움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불 타서 무너져내리는 건물들의 뒤안에도 새로 태어난 어린생명이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은 파괴적인 전쟁터의 암흑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이 아직 존재한다는 암시인가? 전쟁의 목적은 파괴를 위한 파괴일까? 화려한 꽃이 만발한 벚꽃 나무를 도끼로 모조리 찍어버리고, 살아 움직이는 개와 젖소를 아무 이유없이 무참히 도륙하고 퇴각하는 적군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선과 악의 갈림길은 의외로 멀지 않은 것 같다.

​“슬픔처럼 연기로 잘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는 말을 연극 영화를 가르치는 친구 교수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의 끝에 동생이 죽은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블레이크 중위(Lieu tenant Blake, Richard Madden역)의 얼굴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말과 글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의 표정이 전해주는 슬픔의 깊이를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판단의 기준이 특정한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했다면, 이 영화가 아카데미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어야 옳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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