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리서리 꿈서리 하렷다

2020-02-17 (월)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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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늘 새롭게 선택하는 자만이 삶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독일의 시성(詩聖) 괴테의 말이다.

과학에서 최면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로 발견하게 된 사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 두뇌 컴퓨터에 입력되어 우리가 다 기억할 수 있으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편집한다는 것이다.

공포심, 반감, 투쟁심, 또는 사태의 압박, 초조, 불안감 때문에 많은 기억들을 우리 의식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기억이란 과정을 거친 것은 죄다 일종의 픽션이라고 해야할 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역사와 문학이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예부터 덧없는 인생의 무상함을 가리켜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했다. 젊어서는 앞날에 대한 무지개빛 꿈으로 부풀고 나이 들면 주마간산(走馬看山)이듯 홱홱 지나쳐버린 일들이 꿈결만 같다. 그렇다면 젊어서는 꿈 많은 사람이, 나이 들어서는 추억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가 아닐까. 또 그렇다면 종자씨 까먹거나 선 참외 서리보다 봄에 씨 많이 뿌려 무르익은 오곡백과 가을걷이가 더 푸짐 느긋하게 신나고 보람 있으리라.

우리가 밤에 자면서 꿈꾸는 동안은 꿈인 줄 모르다가 잠에서 깨어날 때라야 꿈이었음을 알게 되듯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삶이 또한 꿈이었음을 깨닫게 될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면서 꿈꾸는 동안에도 더러 어렴풋이나마 모든 것이 한갓 꿈속의 일인 줄 알게 되는 수가 있는 것처럼 이 세상 삶이 어떻든 간에 또한 꿈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가 알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가 살아 숨쉬며 잠 깨어 꾸는 꿈이야말로 우리가 꿈속에서 꾸는 꿈이 아닐까. 그리고 자기가 꾸고 싶은 꿈만 꿀 수는 없을까.

흔히 우리가 꿈속에서 경험하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꿈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아보자. 개미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죽어라 하고, 어떤 과인이나 괴물로부터 도망치려 해도 손과 발이 말을 안 듣고, 몸이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지 않는 꿈은 직장이나 결혼 또는 친우관계 등에 얽매여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궁지에 빠져있는 느낌 때문이고, 높은 절벽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은 자신의 체면손상이나 사회적인 지위 상실을 걱정하는 까닭이며, 공중을 나는 꿈은 비약적인 성공이나 생활향상을 희망하거나 세상의 온갖 근심과 걱정 다 떨쳐버리고 세속적인 일들로부터 초월해보고 싶은 염원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이따금 벌거벗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은 우리의 거짓되고 위선적인 면이 드러나 우리의 적나라한 진상이 세상에 폭로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시험문제를 앞에 놓고 그 가운데 가장 쉬운 문제 해답조차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낑낑대는 꿈은 일상생활에서 하찮은 일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자신감 결핍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버스나 기차, 배나 비행기를 놓치는 꿈은 절호의 찬스를 놓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거나 갈 길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하는 데서 생긴단다.

이러한 꿈 전문가들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꿈보다 해몽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익히 들어오지 않았나.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 어머니나 다른 분들이 태몽을 꾸셨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태몽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시지 않았는가. 생각 좀 해보면 이 태몽이란 것도 태몽에서 시작해서 태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태생 전 태교육으로부터 출발해서 태생 후 탯줄 아닌 탯줄로 이어지는 정신적 세뇌작업 또는 심리적 승화작용을 통해 꿈꾸듯 하는 삶의 꿈이 연면히 계속되는 것이리라. 그런즉 서리서리 꿈서리 하렷다.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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