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이름

2020-02-04 (화) 정강 밀러/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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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다 성이네요’ 처음 만난 어떤 분께 들은 말이다. 내 이름 ‘김정강’은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서 사람들이 질문이나 코멘트를 자주하는 편이다. 더구나 남편의 성, 밀러가 붙여져서 한국어로 썼을 때에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가 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은 실로 멀티 컬추럴하다.

어렸을 때는 별명도 다양했다. 설날에 먹는 한과로 부터 신체부위까지.  발음도 쉽지 않아서 이름이 다양하게 불려졌다. 어른들은 발음하기 쉽게 받침을 바꾸기도 했고, 친구들은 이름의 마지막 끝 자만 부르기도 했다. 이름 순서를 바꿔서 부르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한번도 내 이름이 싫다거나 다른 이름으로 바꿨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특이하지만 이름이 나하고 잘 맞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다들 궁금해한다. 아버지가 5형제의 막내시고, 사촌오빠가 7명, 사촌언니가 2명이 있다. 두 살 많은 오빠까지 합쳐서 10명의 손주들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다 지어 주셨다. 집안의 막내인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께서 실망을 크게 하셨다.  막내 손자를 원하셨는데 여자 아이가 태어나서이다. 그러니 할머니께서 얼굴도 보기 싫어한 손녀의 이름을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실 리가 없었다. 


그 당시 교사이셨던 셋째 큰어머니께서 큰아버지와 상의하셔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 정강(靜江 ‘고요한 강’)이라는 뜻인데, 일본 발음은 ‘시즈에’이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으신 큰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일본 이름이라고 하셨다. 

대학교 1학년때 중국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가이드였던 중국인이 한자로 적힌 내 이름을 보고 중국식으로는 ‘징쟝’이라고 발음하면서 아주 예쁜 중국 이름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과 일본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7살때 지원한 초등학교 합격 결과를 받으러 갔던 날이다.  내 이름이 불려서 어머니랑 너무 좋아서 합격서를 받으러 앞으로 갔는데, 그때 나랑 이름이 똑같은 여자 아이가 자기 어머니와 나와 있었다. 

나는 6번이었고 그 아이는 9번이었는데,  합격번호가 9번이었다. 만약에 나도 그 학교에 나도 합격해서 같은 이름의 아이와 6년동안 같은 학교를 다녔다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아흔이 넘으신 큰어머니는 항상 나를 부르실 때는 나의 이름 한자 한자를 조심스럽게 불러 주신다. 그때마다 내 이름이 마치 귀한 보물처럼 느껴진다.

<정강 밀러/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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