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잇값 하기

2020-01-3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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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 타임스스퀘어의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행사를 TV로 보면서 2020년 1월1일을 맞았고 새해 아침에는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24일후인 지난 25일 음력설에 또 떡국을 먹었다.

미국에 오래 산 한인들도 전통적 우리 명절을 그냥 지나가기 섭섭한 지 설이 가까워지면 한국 마트에서 떡국 봉지를 사게 된다. 그야말로 소박한 이중과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새해 첫 음식으로 떡국을 먹을까? 또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을까? 먼저, 떡의 흰색은 지난 해 안 좋았던 일들을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긴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집안의 번창을 뜻한다. 흰색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순수와 장수, 새로운 탄생의 색이다. 그래서 흰색 옷도 즐겨 입었다.


그리고, 떡국=나이라는 셈법이 적용된 것은 최소 200년 전부터다. 1819년에 제작된 ‘열양 세시기(歲時記)’에 ‘섣달 그믐밤에 식구대로 한그릇씩 먹는데 이것을 떡국이라고 한다’고 기록됐다. 떡국을 첨세병(添歲餠: 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시절, 떡국 두 그릇을 먹으면 두 살을 더 먹는다고 하여 떡국 두 그릇을 목이 차오르도록 먹은 적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지만 친하다보면 몇 살이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미국 나이가 한 살 덜 먹다보니 보통 미국 나이로 말하지만 가끔 “그럼 한국 나이로 몇 살인 게야? ” 하는 질문을 듣는다. 그러면 “아직 생일이 안 지났으니” 하고, 어떻게든 한 살이라도 줄인, 만 나이로 답하게 된다.

한국 나이와 미국 나이가 차이 나는 것은 한국은 엄마의 뱃속 태아 시절도 나이에 넣기 때문이다. 한국은 태어난 순간이 한 살이다. 미국은 처음 태어나면 0살이며 첫 돌에야 한 살이 된다. 2019년 12월30일에 태어난 아기는 바로 이틀 후인 2020년 1월1일에 한국나이로는 두 살이 된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 새해를 맞았으니 또 한 살을 더 먹은 것이다.

한국식 세는 나이는 옛 고대 중국에서 유래돼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다. 한국은 1962년 민법상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생일에 한 살이 늘어나는 만 나이를 쓰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세는 나이를 쓰고 있다. 청와대 홈 페이지 국민청원방에도 한국식 나이 셈법을 없애자는 청원이 올라오지만 태교를 중시하는 문화관습을 바꾸기는 힘든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싶다고 먹는 것이 아니고 줄이고 싶다고 해도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나잇값’ 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잇값은 돈으로 구체적으로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살아온 햇수만큼의 그 사람 인격, 즉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뜻한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이 어처구니없거나 철없이 행동하면 가장 큰 욕이 ‘나잇값 좀 해라’, ‘나이를 헛먹었나?’ 이다.

나잇값을 못하면 큰소리가 나고 분쟁과 불화의 소지가 된다. 나이가 어리지만 지나치게 성숙하면 ‘애어른’이라는 말도 있다. 이래저래 가장 좋은 말이 나이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우리 대부분이 그 경계를 자주 넘나들고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고 40세에 미혹되지 않았고 50세에 하늘의 명을 알았다, 60세에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70세에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나잇값을 제대로 하며 산 것이다.

100세 시대에 나이값을 하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 젊은이가 나잇값 하라는 말을 듣는다면 조신하게, 나이에 맞게 예의를 지니라는 뜻이고 70~80대 노인이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을 배려하라는 것’이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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