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88)제42대 William Jefferson Clinton 대통령(6)

2020-01-06 (월)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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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년 12월 19일에 Clinton 은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하원에 의해서 탄핵되는 대통령이 된다. 무슨 잘못을 얼마나 저질렀기에 탄핵을 받게 되었을까”
“정치적인 과오”가 얼마나 컸으면 탄핵까지 받게 되었을까?

Clinton 에 관한 기사를 처음 시작하면서 필자는 “Clinton 이 염문” 에 시달려 왔던 것이 아니고 “성추문에 휩싸여” 왔었다고 얘기 했었다.

“염문”은 경우에 따라서는 romantic 하게 들리는 수도 있지만 “성추문”은 한차원이 더 낮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Clinton 은 성추문에서 시작된 조사로 대통령직을 파면 당할수도 있는 탄핵까지 받았으니 어지간히 딱한 사람이다.


Clinton 의 탄핵이 정당했던 일이었는가 라는 질문은 정치가들이나 역사가들의 판단에 맡기드라도 대통령까지 꿈구어 온 정치인으로써 처신이 현명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정치판이 얼마나 “치사하다”는 것을 젊은 나이 때부터 경험해온 Clinton 으로서는 변명하기가 아주 궁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었다.

Clinton 은 두가지 이유로 탄핵을 받았는데 사실은 Clinton 의 성추문은 Trump 대통령의 성추행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의 추행으로써 다분히 Clinton 을 무슨 방법으로든지 낙마시켜보려는 공화당의 정략에 몰려들었던 것이라고도 볼수 있으나 전혀 근거가 없었던 일들은 아니었다.

발단은 Clinton 이 백악관 Intern 을 하고있던 22세의 Monica Lewinsky 와 대통령집무실 화장실에서 성행위를 했다는 것으로써 Clinton 은 Lewinsky 와 sex 를 하지 않았고 oral sex 를 했었다는 것은 인정하였었는데 공화당측에서는 “Oral Sex 는 Sex 가 아니냐?” 라고 주장하면서 대통령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 “죄”가 있어서 탄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었다.

공화당원으로 Clinton 을 혐오하고 있었던 한 백악관 여직원의 꾀임에 빠져 Lewinsky 가 Clinton 과의 관계를 발설하기 시작해서 말썽이 한참 고조되어 가고 있을때 Clinton 이 Arkansas 주지사를 했을때에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었다고 주장하는 Paula Jones 라는 여성이 Clinton 을 민사로 소송하였다.

하원 법사위원회는 Paula Jones 문제에 대해서 Clinton 에게 서면 증언을 받았었는데 그 증언에 허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Clinton 의 성추문 문제를 조사하기 위하여 Ken Starr 라는 특별검사가 임명되었는데 Starr 는 극히 보수적이며 Clinton 을 증오하는 사람이었었다.

Starr 가 Clinton 을 특검사무실에 소환하여 심문한 일문일답의 전문이 New York Times, Washington Post 등 각주요 신문에 전문이 보도되었었다. Starr 는 이 조사과정에서 Clinton 이 “위증”하였다고 주장하고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고 하였다고 하원에 보고하였다.


하원의 법사위가 탄핵을 결의한후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임기말에 특별히 소집된 하원은 Clinton 을 228 대 206 으로 “위증” (Perjury) 혐의로, 221 대 212 로 “공무집행 방해” (Obstruction of Justice” 혐의로 탄핵하였다.

이 표결은 공화당이 주도하였으나 소수의 민주당의원들도 탄핵에 찬표를 던졌었다. 상원은 임기가 끝날때까지 “재판”을 하지 않다가 중간선거후 새로 소집된 상원에서 21일간의 토의끝에 “위증”혐의는 55대 45로 무죄결의를 하였고 “공무방해”혐의는 50 대 50 으로 역시 무죄결의를 하였었다.

상원의 “유죄”결의를 위해서는 출석의원 3분지 2인 67표가 필요한 것이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2001년에 Arkansas 주 고등법원은 Clinton 이 특검조사에서 변호사 품위에 적합하지 않은 일이 있었었다고 인정함에 따라서 그의 변호사 면허를 5년간 정지시켰었다. 어쩌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탄핵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미국역사에 남는 Clinton 의 오점이다.

미국의 대통령과 각주의 주지사들은 “사면권”이 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나 주지사들이 한국에서처럼 “년례적이고도 대규모”인 사면을 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가끔 말성이된 사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4년에 탄핵직전에 사임을 했던 Nixon 에 대한 연방차원의 수사가 진행되자 Nixon 의 지명으로 부통령이 되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Ford 가 재판도 받지 않았던 Nixon 을 “사면”해 주어서 크게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이 한 예이다.

사면에 관한 역사적인 선례들이 충분하지도 않고 분명하지도 않아 Trump 의 변호사임을 자칭하고 다니는 Rudy Giuliani 는 얼마전에 Trump 는 대통령임기가 끝나기전에 자신을 사전 “사면”해 둘수가 있기 때문에 Trump 의 탄핵은 실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을 뿐만아니라 퇴임후 재임중의 범법으로 기소될수도 없다고 말해서 많은 핀잔을 받았었다.
Clinton 도 임기말에 했던 사면으로 크게 논란이 났었던적이 있었다.

Clinton 은 대통령임기 마지막날인 2001년 1월 20일에 141명을 사면해주고 36명을 감형해 주었다.

이 사면과 감형이 발표된후에 Clinton 의 처남인 Hugh Rodham 이 이 감형심사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영향을 주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연방의 검사가 조사를 한 결과 그와같은 사실이 없었음이 밝혀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사면에 관한 잡음은 계속 되었었다고 한다.

Clinton은 대통령 재임 8년동안에 Ruth Bader Ginsburg 를, 1993년에, Stephen Breyer 를 1994년에 연방대법관에 임명하는데 그쳐서 대법원에 크고 장기적인 영향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는 연방 고등법원판사 66명을 임명하였고 305명을 연방 지방법원판사로 임명하였는데 총계 373명에 이르는 연방판사들의 임명은 Reagan 대통령에 뒤이어 미국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판사를 임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판사지명을 받은 사람들중 67명이 공화당 주도하의 상원 법사위의 인준을 받지 못하였었는데 지명자중 84%는 인준을 받았었다.

Clinton 은 공화당의 저지를 받았었는데 예를 들어서 New York 출신으로 Hispanic 계 여성이었던 Sonia Sotomayor 는 공화당주도의 상원 법사위가1년 이상이나 지연을 하다가 1998년에 연방 고등법원판사로 인준을 해주었었다.

Sotomayor 는 차후 Barack Obama 대통령에 의해서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되었었다.
Clinton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법관들과 소수민족 법관들을 백인 남성법관들 보다 더 많이 연방판사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그의 고등법원판사 지명자들중11.6%, 지방 법원판사 지명자중 17.4%가 흑인들이었으며 고등법원판사 지명자중 32.8%, 지방법원 판사 지명자중 28.5%가 여성들이었 다고 한다.

Clinton 은 제4고등법원에 최초의 흑인판사를, 제7고등법원에 흑인여성을 임명하였다고 한다. 그는 최초의 공개적으로 동성연애자 이었던 여성을 연방 지방법원의 판사로 임명하였다. 지금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관례이지만 Clinton 이 이와같은 판사들을 임명하였다는 것은 미국 역사적으로 볼때에는 “파격적”인 일이었었다.

Clinton 은 Madeleine Albright 를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부 장관에 임명하여 그의 임기말 까지 4년동안 일하였는데 비교적 유능한 국무부 장관이었었다.

Clinton은 임기초에 상원의 국무위원 지명인준에 공화당의 저지를 받아 힘들었었는데 각료중 가장 요직인 Attorney General 에 Harvard 대학교 법대 (학생 500명중 여학생은 16명) 출신인 Janet Reno 를 미국 최초의 여성 Attorney General 에 지명하였는데 그녀는 상원에서 98 대 0 으로 인준을 받았었다.

그녀는 Florida 주의 Attorney General 으로 10여년간 일한 경력이 있는데 Clinton 과 함께 8년동안 근속하여서 미국 Attorney General 중 두번째로 장기근속한 기록을 세웠었다. 그녀는 재임중에 여러가지 좋은 공로가 있었으나 차라리 재임중에 일어난 비극적 실책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1993년 2월에 Texas 주의 Waco 에서 Koresh 라는 교주가 지도하는 Branch Davidians 이라는 사교단체가 불법적인 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FBI 등 수사기관 요원들이 진압을 하고자 건물을 포위하였다가 수사요원 네명이 Koresh 일당에게 사살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Reno 가 Attorney General 에 임명되기 12일전에 시작된 것이었다. 양측의 대립이 51일이나 계속되고 있었는데 건물안에서 어린아이들이 학대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고 외부의 무장단체가 Koresh 를 도웁거나 징벌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 건물을 습격하려고 한다는 정보가 들어와서 Reno 가 Koresh 측과 협상을 벌였으나 타협이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맺게 되었었다고 한다.

최후적인 진압수단으로 Reno 는 장갑차까지 동원하여 최류탄과 gas 를 건물안으로 투척하였는데 화재가 발생하여 70여명이 소사하였고 그중에 17명은 어린아이들이 었었다고 한다.

이 참사는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었고 Reno 자신도 진압방법이 적합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였었다.

<조태환/ 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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