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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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모험이어라

2019-12-31 (화)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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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무가지(無價紙) AM 뉴욕 메트로 뉴스 1면 톱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은 사랑이다(LOVE IS LOVE)’란 플래카드를 양쪽에서 들고 있는 두 남자는 60여 년을 서로 사랑하며 같이 살아온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진 설명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이성 간이든 동성간이든 심리적으로 사랑은 사랑이라면 생리적으로 사랑(LOVE)의 상징적인 글자 ‘O’는 ‘구멍은 구멍이다(HOLE IS HOLE).’ 아니겠는가 하고 자문하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인생이란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란 말이 옛날 그리스 격언에 있다. 어렸을 때 산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개미 새끼 같아 보였다. 그리고 국군의 날 군인 아저씨들이 시가행진하는 것이 병정놀이 같았다. 결혼 후 여름 바닷가에 가서 아이들과 놀 때면 어른들이 돈 많이 벌겠다고, 유명해지겠다고, 감투 쓰겠다고 애쓰는 것이 어린아이들이 열심히 모래성 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어렸을 때 인정이 많아서였는지 점심을 못 가지고 오는 반 친구가 있으면 같이 나눠 먹고 때로는 도시락 채 주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헐벗은 거지 아이를 보면 입었던 옷까지 벗어주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야단맞곤 했던 기억이 있다. 추석 다음 날엔 학교 변소가 초만원이었다. 평소에 잘 못 먹다가 모처럼 기름진 음식을 먹었거나 과식한 탓이었으리라.

좀 더 생각해보면 6.25 한국전쟁 때 어른들의 전쟁놀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며 수많은 비극과 엄청난 불행을 겪었는가.


다른 사람들 얘기는 그만두고 내가 직접 겪은 일들만으로도 인생이 비극인 동시에 희극인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8.15해방 전 학교에서 공출한다고 칡넝쿨을 걷으러 산비탈을 기면서 손과 발, 팔다리가 가시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루는 학교 방공호 속에 들어가 이를 잡아서는 종이봉지에 담으라고 했다. 많이 잡는 아이에게는 상까지 준다고 해서 나는 남보다 많이 잡아보겠다고 한 손에 종이봉지를 들고 또 한 손으로만 이를 잡는 대신 종이봉지를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부지런히 잡아넣었는데, 시간이 다 돼서 선생님께 드리려고 종이봉지를 들여다보니 이가 한 마리도 없는 게 아닌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추운 겨울날 내복을 벗어 이를 잡으니 이도 추위를 못 견뎌 따뜻한 곳을 찾아 다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 갔음이 틀림이 없다. 또 해방 이후 일본사람들이 살던 ‘적산가옥’에 미군장병들이 살게 되면서 버린 쓰레기통에서 보물 찾듯 ‘고무장화’ 콘돔을 주어다 고무풍선처럼 신나게 불고 다녔다. 장난감이라곤 없던 시절에 새롭고 신기한 횡재였으니까.

이런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두 희극이고 느끼자면 비극 아니겠는가. 아마 느끼기를 너무 심하게 했더라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인생을 비관해 염세자살이라도 하고 말았으리라. 반대로 인생이 희극일 뿐이라고 생각했더라면 허무주의(nihilism)에 빠져 케세라 케세라 될 대로 되라며 취생몽사(醉生夢死)했으리라.

그러나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온 데는 일찌감치 내가 제3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은 물론 희-비극임에 틀림없지만 그보다는 모험이란 생각에서 매사를 탐험하듯 용기와 신념을 갖고 열정으로 살아왔다. 남들이 다 안 된다고 엄두도 못 내는 일이면 더욱 해볼 마음이 생겼고 아무도 생각조차 못 해본 일 일수록 더 해보고 싶었다, 남들이 이미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새로 길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보고 싶었다.

어차피 인생이 소꿉놀이 같다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매사 너무 심각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각자 제멋대로 제 마음대로 제 가슴 뛰는 대로 살아보는 것 이상 없지 않겠는가 싶다. 프로이트도 성욕 애욕을 의미하는 ‘리비도(libido)’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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