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42대 William Jefferson Clinton 대통령④

2019-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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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 미처 몰랐던 토막얘기들 (286)

공화당이 양원의 다수당으로 뽑힌 1994년의 중간선거 결과를 보고 아마 가장 심하게 충격을 받은 사람이 Clinton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Clinton 은 불과 2년전에 대통령에 취임한후 Bush 의 보수적인 정책에서 탈피하고 재정적자도 줄여가면서 경기도 활성화 시켜보려하고 진보적정책을 도입해 보고자 진력해오던 중이었다.

사실상1930년대부터 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미국의 대공항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국가다웁지 않게 New Deal 정책들로써 제도들을 개선하고 미국의 경제활동에 연방정부의 역활이 대규모이고 계획적으로 막강해지도록 하였으며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다소생소한 “Social Security System” 을 채택함으로써 일부의 보수적인 국민들로 부터는 “사회주의로 가자는 것이냐?” 라는 불평도 들었었다.

이와같은 추세는 중간 중간에 있었던 공화당 대통령들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지고 있었는데 민주당의 Lyndon B. Johnson 대통령때 민권옹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위한 세법개정, 저소득 등 소외계층들을 위한 사회복지 향상, 일반국민들의 건강, 실직, 은퇴 등에 대한 배려등으로 상징되는 진보적 정책들이 더욱활발하게 집행되었었다. 그러나 월남전의 완전한 패배로 Johnson 이 재선출마를 포기하고 그 후임으로 공화당의 Nixon 이 대통령 으로 취임하면서 연방정부의 정책이 보수화 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은 정책의 선회는 그간 연방정부가 너무 진보성향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느냐고 생각했던 많은 국민들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1994년의 중간선거 패배후 Clinton 은 향후 그의 정책이 중도쪽으로 다소 선회해야될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또 그의 정책들이 야당이 다수당인 국회의 저지를 받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FDR 때인 1935년부터 꾸준히 확장일로에 있었던 연방정부의 사회복지제도에 급brake 를 거는 Welfare Reform Act 가 1996년에 공화당 주도하의 국회 에서 입법되고 Clinton 은 이법에 서명하게 된다.

이 개정법에 따라서 그동안 부양청소년들이 있는 저소득층에게 거의 자동적으로 지불되어오던 연방정부 복지금이 사실상 폐지 되어 버렸고 그대신 연방예산 164억불 정도가 각주에 배당되어 각주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쓰도록 되었다. 연방정부의 권한 일부가 주정부에 이양된 것이기도 하였지만 저소득층이 복지혜택을 받기가 까다로워 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었다.

1996년 8월에 입법된 이 “보수적”인 법은 “중도진보적”인 Clinton 이 그 3개월후에 있을 총선에 영향을 주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Clinton은 11월의 총선에서 공화당의 대통령후보 Bob Dole 상원의원을 거뜬히 물리 치고 재선에 성공한다. 일부 관측자들에 의하면 1996년의 대선은 Clinton 이 이겼다기 보다는 Bob Dole 이 진 선거라고도 한다. 공화당이 내어놓을만한 후보가 없어서 가장 매력이 없는 Dole “노인”을 내어놓은 당연한 결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 총선에서도 계속 하원을 장악하였으며 상원의 의석수도 조금 늘렸었다고 한다.
Clinton 은 취임초부터 불쑥 불쑥 진보적인 정책을 채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치적으로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는 정책을 채택하고 입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의 8년간의 대통령임기가 순탄하지는 않았었지만 여러가지 역경을 꿋꿋하게 잘 넘긴 능력도 가진 정치인이 었었다.

1993년 8월에 Clinton 은 공화당의 협조가 없이 Omnibus budget Reconciliation Act of 1993 이 입법되도록 하였다. 이 법은 저소득층 1,500만명의 세금을 감소시켰고 소규모 사업체 90%에게 세금감소 혜택을 받도록 했으며 최고액 부유층 1.2% 의 세금은 인상되 도록 하였으며 지출예산의 증대를 억제함으로써 장차 수년간 균형예산이 수립되도록 하였다.

1993년 9월 22일에 Clinton 은 국회에서의 가장 중요한 정책연설에서 국가 보건제도 (National Health Care Plan) 으로 전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것은 그의 부인 Hillary Clinton 이 주관한 국민건강보호를 위한 특별 연구단의 보고에 기초를 둔것이었다. 이 제안은 최초로 실질적인 국가건강보험제도를 수립해 보고자한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큰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보수주의자들, 미국의사협회, 보험회사등의 강력한 반대를 받아서 시작부터 난항을 겪게된다. 1994년에 민주당의 George Mitchell 상원의원의 주도로 입법이 시도되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였다. 일부의 비평가들은 백악관내에서조차 이 문제에대한 완전한 의견통합이 되지 않았던것도 입법실패의 원인이었다고도 한다. 이 국가건강보험제도는 2019년말까지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난제이다. 그러나 Clinton 의 선각자적인 정책시도는 높이 평가받을만한 일이다.

이 기사의 원고를 잠시 쉬었다가 다시 계속하려고 하는 지금 이 시각이 2019년 12월 18일 저녁 9시이다. 지금 막 미국역사의 새로운 한 page 가 쓰여지고 있는 순간인 것이다. 미국하원이 세번째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다. 탄핵이유 제1항은 “권력남용” (Abuse of Power) 이고 제2항은 “국회공무방해”(Obstruction of Congress) 이다. 우리는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수가 흔히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미쳐 의식하지 못하드라도 역사는 매순간 마다 계속 써지고 있고 우리 모두는 역사를 쓰고 있는 책임자들이다.


아주 오래전에 Winston Churchill 은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제도가 아닐수도 있는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민주주의보다 더 좋은 제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쯤 되는 얘기를 한적이 있다. 대단한 명언이라고 생각된다. “민주주의”는 가끔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르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도록 내버려두면 잘못을 자연스럽게 수정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2016년의 대통령선거중에 Ruth Ginsburg 이라는 미국의 여자 대법관이 “만일 Donald J. Trump 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디로 이민을 가야할런지 고민중이다” 라는 진담반, 농담반의 얘기를 했다가 나중에 사과를 하는등 진땀을 뺀적이 있는데 실은 필자도 Ginsburg 의 농담에 동감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의 “미국역사”를 되돌아보니 2019년4 월 29일에 쓴 256호에 “Nixon 은 Trump 에 비하면 영국신사” 라고 제목을 붙혔던것이 생각이 나서 혼자 미소를 지었다. Nixon 은 그래도 정치감각은 빨라서 하원의 탄핵의결 직전에 자진사임 함으로써 미국역사상 “두번째로 탄핵된 대통령” 이라는 불명예는 면했지만 Trump 는 제17대 Andrew Johnson, 42대의 Bill Clinton 에 이여 “세번째”로 탄핵받은 대통령이 된것이다.

현재는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당으로써 Trump 가 상원의 “재판”에서 재적 3분지2의 찬성으로 “파면”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앞으로 있을 상원의 청문회에서 무슨 문제들이 추가로 터져 나오느냐 에도 달린 일인지라 아주 방심할 수도 없는일이다. 대통령의 “탄핵, 파면”에 관해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선배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가 “자정능력”을 보여주는 결정을 하여서 불행중 다행한 일이다.
정확하게 21년 1일전인 1998년 12월 19일에 Bill Clinton이 두번째로 탄핵을 받았던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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