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노와 용서

2019-12-11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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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경 스파르타에 마지막 왕으로 리그르고스 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 왕이 어느날 유세를 하는 도중 갑자기 그를 반대하는 진영에서 한 청년이 그의 눈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왕은 그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거처지로 데려가 그에게 요리를 하도록 시키고 만든 음식을 함께 먹는 아량을 베푼다. 이 청년은 감복한 나머지 그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을죄를 지었다며 무한히 사죄한다. 왕은 그를 일으켜 의자에 앉히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네가 대신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 청년은 그때 이후 한쪽 눈을 실명한 왕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눈을 찔린 아픔이란 누구도 상상 못할 크나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리그르고스 왕은 그를 참하는 대신 따뜻하게 맞이하여 그와 함께 지내는 미덕을 발휘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용서가 아니겠는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 가해자를 악 대신 선으로 되돌리는 이 왕의 한없는 미덕과 포용력은 결국 그가 많은 것을 얻는 결과를 가져왔다. 청년의 한없는 충성심이 그에게 되돌려졌기 때문이다.

최근 분노를 용서로 승화시킨 한 한인 가족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훈훈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인 김영근 교수를 숨지게 한 살인자를 김 교수의 가족이 가해자를 분노보다 용서하고 나선 것이다. 김 교수는 맨하탄 한 은행 ATM에서 돈을 인출하던 중 돈을 빼앗기고 숨지는 참변을 당했다. 가해 남성이 김 교수의 머리를 가격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나흘만에 결국 숨졌다. 가해자는 불과 300달러를 빼앗아 달아났다 이내 체포됐다.


하지만 불행을 당한 유족들이 가해자의 행위에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최고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는 죄를 불과 징역 10년형 정도로 감형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 교수의 유족이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기해서 나온 결과다.

고인의 아들은 “내가 얼마나 아플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미워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며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했다.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선택인가. 유족의 선한 마음으로 가해자가 형을 살고 나오면 꼭 리그르고스 왕을 죽이려고 했던 자를 용서해서 그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평생 은혜를 갚으며 산 것처럼 그도 반드시 선한 마음으로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레이첼 킹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라는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자신의 가족중의 누구를 참혹하게 죽인 살인자를 분노로 갚으려는 대신 가해자를 용서로 승화시킨 감동의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사랑하는 부모를 살해한 자, 부인을 칼로 수십 차례 찔러 죽인 자, 사랑하는 자식을 유괴해서 죽인 자 등을 증오 대신 구명에 앞장서 그들을 용서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말한다. “이 세상을 훈훈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해친 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왜 그들이 죽여도 시원찮을 살인자를 용서했을까. 자신들이 분노심을 안고 살아간다면 더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분노가 오히려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해치기 때문에 더 용서를 택했을 것이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혹 증오심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면 살인을 한 사람까지도 용서한 이들을 한번 떠올려 보라. 이 해가 가기 전에 마음속에 있는 모든 악 감정을 깨끗이 버리고 가면 좋을 것이다. 분노가 마음에 쌓이면 자신을 해치는 독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의 말대로 분노는 결국 자신은 물론 타인을 해치는 결과까지 가져온다.

어느 철학자는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자체로서 복을 받는 것이고,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그 마음 자체가 벌을 받은 것이다.”고 말했다. 마음속에 품은 분노가 얼마나 독이 되는 것인가를 확실하게 일깨우는 명언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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