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통의 감사절(National Day of Mourning)

2019-12-10 (화)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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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칠면조 고기 맛이 낯설은 한인 이민자들도 이 “미국인이 되어가는 비 정규과정”에 쉽게 적응하여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칠면조를 오븐에서 꺼내며 뿌듯해 한다. 먹음직스러운 칠면조를 식탁 한 가운데 놓고 가족과 친지들이 사랑의 성찬 나누는 추수감사절이 몇 주 전 지났다. 

이렇듯 가족들이 모여 감사를 나누는 추수감사절이지만 , 매사추세츠 주의 원주민들은 1970년 부터 추수감사절을  “National Day of Mourning (비통의 날)”로 부르고 유서 깊은 플리머스에 모여 기념식을 갖는다.  

영국인들이 1600 년도 초반부터 미 동부지역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1607년부터 수확을 감사하는 잔치를 갖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나, 첫 Thanks giving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1620년 19명의 여성을 포함한 102명 청교도들과 30여명의 선원들이 영국의 Plymouth (플리머스)에서 메이훌라워호를 승선하여 11월 9일 매사추세츠 주 Cape Cod (케이프 카드)에 도착하였다. 두 달간의 항해는 많은 이들을 지치고 병들게하여 단지 5명의 여성을 포함한 53명의 청교도들과 반 정도의 선원만이 생존하였으나 정착한 신세계에서의 풍토병과 영양실조로 또한 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후에 자신들이 정박한  케이프 카드 지역을 플리머스라 불렀으며, 청교도들은 원주민 ‘왐파녹(Wampanoag)’부족의 도움으로 이듬 해에 첫번째 수확을 거둘수 있었다. 

청교도들은 친절하게 큰 도움을 준 이웃 원주민들을 초대하여 애찬을 나누며 하나님께 수확을 감사한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고, 1863년  남북전쟁 중에 링컨 대통령이 11월 네 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이 아름다운 풍습은 지금까지도 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도움없이는 정착이 불가능했던 이주민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욕심을 내기 시작하고 미대륙을 식민지화 하여 생명의 은인이었던 원주민들을 박해하였다. 그들의 식량을 착취하고 잔인하게 폭행하며 잡아다 노예로 팔고 신성한 조상의 묘지를 파헤치는등 정착민들의 만행으로 조상이 겪은 비통한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지금도 지속되는 제도적 인종차별을 항의하는 평화운동이다. 

백인우월주의로 왜곡된 미국역사를 바로잡고 원주민들의 토속신앙전통인 ‘모든 사람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기대하는 순수한 바램이다. 

함께 기뻐했던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무색하게  정착민들이 갖어 온 성차별, 인종차별, 편협한 신앙등으로 교도소와  사회계급제도를 만들어내어 인간관계의 불화를 초래하는 상황을 비통해 하는 그들의 조용한 몸부림이다.

<김성실/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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