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님치레

2019-12-03 (화) 정강 밀러/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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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 할러데이 시즌에는  다른 때 보다는 손님치레를 더 많이 하게 된다.  

이번 겨울방학 동안 한국에서 친구가 방문을 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자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한달 전 쯤에 그 친구가 겨울방학 동안 우리집에 놀러 와도 괜찮은지 연락이 왔다. 당연히 괜찮다고 하자 그 다음날에 비행기표를 예매했다고 하면서  2주 동안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미국인 친구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좀 무례하다고 했다. 또 다른 미국인 친구는 친구가 와서 좋겠다고 하면서도 2주는 너무 긴 기간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의 반응을 듣고 나니, 남의 집에 방문하는 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손님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는 받아들이는 맞은 쪽의 입장에서 하는 말, 영어로 ‘visitor or guest’는 방문하는 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로 차이가 있듯이, ‘손님치레’ 문화도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어릴 때 항상 집에 드나드는 손님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친가와 외가 쪽에 친척들이 많았고 서로들 왕래가 잦았다. 예전에도 손님들이 아무 예고도 없이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미국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느닷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이 부담이 되고 긴장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 가 있는 동안 하루는 몇 년 동안 만나지 않은 이종 사촌 오빠가 연락도 없이 부모님께 인사드린다고 찾아왔다. 근처에 일 때문에 왔다가 생각이 나서 들렸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사촌오빠가 가끔씩 들른다고 하셨다. 매번 예고도 없이.  

사촌오빠의 마음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연락없이 멀리서 와서 만약 집에 아무도 없을 경우가 걱정된다고 말씀드리자 부모님께서는 그럼 다음에 다시 오면 되지 않냐고 하셨다. 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손님을 맞는 쪽과 방문하는 쪽이 서로 기대감과 부담이 없이 그냥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뉴욕에도 자주 찾아 뵙는 친척분들이 계신다. 매번 다음 방문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음식 메뉴와 일정까지 미리 정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 이상 그 약속 날짜를 꼭 지킨다.  한 번은 그 분들이 사시는 동네 근처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찾아 뵐까 잠시나마 생각을 했지만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당연히 친척분을 방문했을 것이다. 물론 전화연락은 당연히 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한국에 사는 사촌언니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부모님 댁에 들렸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차 안에서 2시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야, 전화를 미리해야지” 라고 하자 아무 답변이 없었다.

<정강 밀러/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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