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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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존엄

2019-12-02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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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은 인종 청소를 내걸고 유럽의 유대인 600만 명을 가스실에 처넣어 학살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인간 도살 역사이다. 사람의 생명을 마구 다루는 잔악 행위는 거의 모든 독재 정권과 호전주의자들에 의하여 강행되었다. 그들에게 인간은 권력 연장이나 패권 야욕의 한낱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어느 의과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하였다. “한 가난한 가정이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렸고 부인은 폐결핵 2기이다. 이 가정에 아들 넷이 있다. 장남 역시 결핵으로 죽었고 다른 아이들도 결핵에 감염되어있다. 그런데 이 부인이 또 임신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한 학생이 성난 소리로 외쳤다. “당장 낙태 수술을 시켜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지금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환경에서 다섯째 아이로 태어난 생명이 악성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사실 인간을 물질적으로 본다면 참으로 허무하다. 생화학자 돌프 빈더 박사는 이런 재미있는 계산서를 내놓았다. 체중 150파운드의 인간을 물질로 환산한다면 그 값은 겨우 12달러 98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새장 하나를 청소할 약간의 석회와 못 한 개 정도의 철과 찻잔 하나 정도의 설탕, 세숫비누 다섯 장의 지방, 성냥 두 갑을 만들 인, 기타 몇 가지의 싼 물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몽땅 약방에서 산다면 12달러 98센트면 족하다고 한다. 사람은 물질이 아니다. 인간이 존엄한 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신의 선물이다. 힛틀러는 지능 지체자(遲滯者)들을 비생산적 소모자라고 해서 안락사 시켰으나 불치병 환자의 생명도 심신 장애자의 생명도 신이 창조한 존귀한 생명이다.

생명은 아름답다. 갓난아기의 생명도 못생긴 사람의 생명도 피부가 검은 사람의 생명도 똑같이 아름답다. 생명 속에는 성장의 신비가 있고 기회의 샘이 있고 행복의 봉오리가 있다. 아무도 그 행복과 기회와 성장을 뺏거나 방해할 권리가 없다. 예수는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고 선언하여 인간의 생명이 전 세계 물질의 총화(總和)보다 더 값짐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존귀한 인간은 이데올로기의 종이 되거나 정권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은 기업주의 생산 수단이나 소위 경제 발전의 도구 이상의 귀중한 생명체이다. 존엄한 생명이 핵 찌꺼기나 화학약품 찌꺼기의 희생물이 되어서도 안된다. 복지사회란 생명을 아끼고 보호하고 행복하게 성장시키는 사회이며 이토록 귀중한 생명을 잘 간수하기 위하여 교육 정치 경제 종교와 지구촌의 유대가 필요한 것이다. ‘생명의 존엄’이란 튼튼한 기초 위에 민주주의도 가능하고 천국운동도 그 의미가 확실해진다. 아름다운 생명, 귀중한 생명을 인식한다면 이 세상도 꽤 살만하며 오늘 우리가 흘리는 땀도 높은 가치가 있다.

생명은 도전이다. 정면으로 대결하라. 생명은 모험이다. 용감하게 그 바다로 출범하라. 생명은 의무이다. 참고 그 짐을 지라. 생명은 신비이다 그 신비를 풀도록 사색하고 공부하라. 생명은 기회이다. 지나가기 전에 잘 사용하라. 생명은 아름답다. 마음껏 생명을 찬양하라. 생명은 투쟁이다. 물러서지 말고 싸우라. 생명은 은혜이다. 감사함으로 소중히 받으라.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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