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자신 수사한 뉴욕 법무장관·FBI 국장 처벌 압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표적수사'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사건 수사를 지휘해온 검사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쫓아냈다.
19일 AP통신 등 미국 주요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그가 나가기를 원한다"며 버지니아동부 연방검찰청의 에릭 시버트 임시검사장을 해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버지니아동부 연방검찰청은 관할 구역 내에 있는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국방부, 법무부 등의 수사기관들이 수사한 국가안보 사건 상당수를 처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 워너, 팀 케인 등 민주당 소속 연방상원의원 2명이 시버트 지명에 찬성한 점이 마뜩치 않아 시버트를 해임키로 결심했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에 시버트 검사장은 검찰청 직원들에게 자신이 사직했으며 이 검찰청의 2인자였던 마야 D. 송은 평검사로 강등됐다고 이메일로 알렸다.
시버트 검사장은 이메일에서 사직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밤늦게 "그(시버트 검사장)가 (자진해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임했다!"고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 썼다.
이처럼 관련자들의 말이 조금씩 엇갈려 해임인지 자진 사직인지 후보자 지명 철회인지는 확실히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배경에 트럼프 대통령 측의 '하명 표적수사 요구'가 있었고 시버트 검사장이 이에 불응했던 점은 명확해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과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에 대해 '하명 표적수사'를 하도록 시버트 검사장에게 수개월간 강한 압박을 가해왔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만난 기자들에게 "내가 보기엔 그(제임스 장관)가 뭔가 죄가 진짜로 있는 것 같지만, 확실히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시버트 검사장은 최근 제임스와 코미를 기소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법무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검찰이 제임스 장관의 부동산 서류 불일치 의혹에 관한 사기죄 수사를 진행했으나 기소할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코미 전 국장을 위증 혐의로 기소할만한 근거도 없다는 게 시버트 검사장이 밝힌 의견이었다.
'하명 수사'의 표적이 된 2명 중 뉴욕주 검찰의 수장인 제임스 법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 등의 사기 혐의 형사사건의 수사를 지휘해 작년 2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올해 8월 2심에서도 유죄는 인정됐으나 형벌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무효화됐으며, 제임스 장관은 형벌 무효화 부분에 대한 상고를 계획중이다.
또다른 '하명 수사 표적'인 코미 전 국장은 2013년 9월 FBI 국장으로 취임했으나 10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트럼프 1기 초기인 2017년 5월 해임됐다.
그는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전에 트럼프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던 도중에 해임됐으며,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버트 해임 방침을 밝히기 전에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해임을 강행할지 여부에 대해 격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과 찰스 그래슬리(공화·아이오와) 연방상원 법사위원장 등 의회 핵심 지도자들 중 시버트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버트를 쫓아내기로 한 이유로 '표적수사 지시' 관련 내용은 거론하지 않고 이와 무관한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댔으나, 전후관계를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 경력이 오래된 시버트는 트럼프의 2기 취임 다음날인 1월 21일에 버지니아동부 연방검찰청의 임시 검사장으로 취임해 근무해왔으며, 연방법무부와 연방검찰청 홈페이지에도 검사장으로 소개돼 있다.
다만 4년 임기로 정식으로 취임하기 위한 공식 후보자 지명 통보는 5월에야 이뤄졌으며, 연방상원의 인준 절차가 아직 진행중인 상태다.
버지니아주를 대표하는 연방상원의원들이며 민주당 소속인 워너 의원과 케인 의원은 4월에 마이클 길과 시버트 등 2인을 버지니아 동부 연방검사장 후보자로 추천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서한을 받고 1개월여 후에야 이 중 시버트를 선택해 지명했으므로, 시버트가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어서 해임키로 결심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