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젊음은 마음 속에 있다

2019-11-26 (화) 07:49:32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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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흐르는 고향을 등지고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칸 드림의 푸른 꿈을 안고 미국을 향한지 40여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고국을 떠나던 날은 왜 그리 추웠는지 멀리 보이는 한강주변이 얼어서 눈앞을 가리던 이별의 눈물만큼이나 뿌옇게 한강다리를 건넜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꿈은 인생을 바칠만한 신기루’ 라고 하지만, 대학 졸업 2년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뉴욕에서 시작한 첫 3년간, 이국의 꿈은 움츠린 집들의 추위마냥 몹시 흔들거렸다. 그래도 젊음이 있었기에 새 터전에 정착하는 어려움을 희망의 설레임으로 여기는 기쁨이 될 수 있었다.

터덜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새로운 환경에서 생기는 긴장감과 생소함을 안고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를 열심히 건너다니며 생동감 넘치게 일하고, 틈만 나면 전공과 영어공부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뮤직홀과 박물관을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가슴벅차게 좇던 푸른 꿈이 하얀 신기루되어 날아간 게 보인 건 너무 멀리 간 후였다.
이미 가버린 시간은 쓸쓸한 여운이 되어 그림자처럼 붙박히고 있었다. 주름에 묻혀 흐트려진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면서 옛모습을 회상하고 있다. 결혼하고 남매를 길러 출가시키고 할머니가 되는 평범한 생활에서 무엇 하나 나 자신을 위해서는 만족스럽게 이루어 놓은 것 없는 아쉬움 속에 젊음은 멀리멀리 가버렸다. 희로애락의 젊음의 추억은 편린되어 마치 낡은 필름을 돌리듯이 끊길 듯 이어지면서 기억의 저편을 더듬고 있고, 삶은 창 밖으로 안타깝게 떨어지는 늦가을 낙엽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허전함이 가을 향기를 타고 맴돈다.

크라운을 한 어금니가 썩어간다고 해서 뺄까말까 6개월 고민하다 결단을 내긴 했는데 막상 한평생 간직했던 이를 뿌리채 뽑고나니 마취주사 기운으로 아프진 않은데 애써 눌러 놓았던 서러움이 북받쳐올라 눈물이 고인다. 다시 그 잇몸에 드릴로 구멍을 내서 피가 줄줄 흐르는 가운데 임플란트를 위한 준비를 했다. 사시병걸린 사람처럼 손이 떨려서 눈을 아프도록 감고 있었더니 치과의사는 놀래서 어디가 아프냐고 한다. 인생고개를 넘다보면 몸의 이곳저곳이 고장이 난다. 60년이상 굴려오면서 부속도 갈고 헤어진 타이어를 갈아끼는 건 당연할텐데 가끔은 두렵고 서글프고 외로운 마음도 든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한 숨소리를 들을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우리의 젊음은 마음 속에 있다.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에 참전했을 때 그의 나이가 70세였다고 한다. 그는 새뮤얼 울만(Samuel Ullman) 이 78세에 쓴 ‘청춘’이란 시를 집무실벽에 걸고 읽으며 젊음을 지켰다는 일화가 있다. 그 시에 의하면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한다. 때로는 이십대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존재한다. 인간은 이상(理想)을 잃어 버렸을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포기하면 영혼이 주름진다. 인간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영감이 있어서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갈채,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젊음은 지속된다.” (일부는 생략) 라고 했다.

맥아더장군의 일화를 읽으면서 삶을 더 반듯하고 열심히 살아야 할 명분과 동력이 생겼다. 나이가 더할수록 욕심은 없애되 나태하지 않으며 너무 자책하지말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만한 일을 하고 남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주면서 살야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젊음을 지키는 마음자세로 오늘을 사랑하며 익어가는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성숙한 삶이 되고 싶다.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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