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 애국자

2019-11-26 (화) 노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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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지난 주 뉴스를 장악했던 트럼프 탄핵 증인 청문회가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내가 왜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이민자들의 스토리는 대동소이하다. 고향을 떠난 그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에 왔다. 

이번 청문회 증인들 중에 유쿠레이나 전문 육군 대령 알렉산더 빈드맨과 전 국가 안보회의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인 피오나 힐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느껴진 것은 이들이 바로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민자의 자녀라는 점에서였다. 그들의 부모도 나처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민 1세들은 그들이 원했던 것 만큼의  ‘보다 나은 삶’을 살지는 못한다. 언어장벽, 문화장벽 그리고 알게 모르게 당하는 인종차별. 그래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던지 여기서 아이를 낳았던지, 자녀를 이 땅에서 키운 이민자 부모들이 원하는 것이 또한 거의 다 똑같다. 내 자식은 이 사회에 잘 적응하여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방색이 강한 영국 엑센트의 피오나 힐의 아버지 알프레드 씨는 어릴 때부터 미국을 동경했으며, 이민와서는 늘 자식들이 미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랬다고 한다. 자식이 아이비 리그를 나와 전문인이 되어 정부 고위직을 가졌을 뿐더러, 정치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나라를 올바로 지키기 위한 애국심이 많은 미국인들을 감동시켰으니 그 아버지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어땠는가. 나의 아이들이 자기 가정을 꾸리게 되자 이젠 됐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잘 살기만 바랬지 그들에게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심어줄 생각은 못했다.  가끔 한국엘 가보면, 한편에서는 시끄러운 집회가 열리기는 해도, 서울 구석구석부터 먼 시골 작은 마을에까지 모든 것이 풍성해 보이고 곳곳에 갖가지 재미있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어서, 잘 살려고 미국에 온 한국사람들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아 묘한 심정이 되곤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한국에 대한 인상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애국심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은 명실공히 미국사람이다. 그들은 미국에 대한 애국심을 갖는 것이 마땅할 터이다.

브루클린에서 엄마 없이 영어 못하는 할머니 손에 자란 육군 대령 빈드맨 씨는 “아빠가 40년전 보나 나은 삶을 위해 러시아를 떠나신 것이 훌륭한 결정이었어요, 그것을 지금 제가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위원들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어요. 아빠, 내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즉 여기는 국민을 탄압하는 러시아가 아니고 자유의 나라 미국이라는 말이다. 정말 멋진 이민자의 자녀이다.

부모는 미처 그런 마음을 못 갖고 살았지만 내 아이들은 미국을 사랑하는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노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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