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지불낙

2019-11-23 (토)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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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달릴 줄 알지만 달리지 않는다. 낙타는 좀처럼 가속하지 않는다. 낙타의 보폭은 언제나 일정하다. 걷는 속도의 변화가 잦으면 전진하기 위한 근육 수축과 균형을 잡기위한 근육 수축이 번갈아 일어나야 하므로 불필요한 낭비가 많아진다.

낙타는 부글부글 끊는 마음만으로도 몸이 축난다는 것을 아는 동물인 듯하다. 낙타는 헤픈 행동을 삼간다.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가 총총걸음을 치거나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는 것은 에너지와 물을 아끼기 위해서다.

전사(戰士)를 태우고 달리면 시속 20킬로미터의 속력을 낼 수 있는 낙타이지만, 시속 5킬로미터의 느린 속도로 뚜벅뚜벅 걸어서 먼 사막을 횡단한다. 낙타는 ‘지지불낙(知止不落)’의 지혜를 아는 동물이다. ‘최형선의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 중에서. ’


‘知止不落’. 멈출 줄 알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릴 수 있지만 누리지 않는 것, 더 먹고 마실 수 있지만 과욕의 참고 절제하는 것, 오라는 곳이 많지만 다 가지 않는 것, 할 말은 많아도 침묵하는 것, 이것이 지지(知止)다.

지지의 미덕을 묵묵히 실천할 때 존경과 품위를 누린다.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에 닿는다. 비난이나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자연히 불낙(不落)의 지도자가 된다. 문자 그대로 불락도약(不落跳躍)을 이룬다.

사람으로 치면 낙타는 감색 옷을 입은 검소한 수도자와 같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분수에서 벗어남이 없다. 수분지족은 낙타의 좌우명이다. 보행이 의연하고, 담담하고, 일정하다. 늘 동일한 보폭으로 순례의 길을 가듯,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간다. 정직한 느림과 독창적인 절제의 방식으로 낙타는 광활한 사막에서 승리한다.

다윗은 낙타를 닮았다.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직행하지 않았다. 7년 반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사울은 폭포같은 직선의 성급함으로 무너졌고, 다윗은 곡선의 완만함으로 승리했다. 제이 쉴리는 말했다. “위대한 인물에게서 나오는 창의성과 천재성은 절제와 쉼에서 비롯된다. 일의 쫓김으로 발생하는 불안, 걱정, 우울, 탈진, 영혼육의 부식은 패자의 특징이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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