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악플처벌 vs. 표현의 자유

2019-11-20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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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4일 한국의 걸그룹 f(X) 출신 탤런트 설리가 25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인터넷의 ‘악플’(악성 댓글)이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직접적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악플들은 제삼자 입장에서 읽어보더라도 차마 견디기 어려운 인격 모욕적 표현들이라 당사자가 받았을 정신적 고통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악플로 인한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한국 연예인들로는 설리말고도 한때 국민배우 반열에 올랐던 최진실과 가수 유니, 탤런트 정다빈, 그룹 샤이니의 종현 등이 더 있다. 설리의 죽음을 계기로 더 이상 악플에 의한 희생을 막기 위해 한국에선 인터넷 실명제 및 악플 처벌을 골자로 하는 일명 ‘설리법’ 제정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역시 인터넷의 혐오발언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학살차원의 끔직한 인종혐오 범죄도 빈발하고 있다. 백인우월주의를 자처하는 중년남성이 작년 10월 피츠버그(Pittsburgh)시의 유대인 회당에서 총격전을 벌여 유대교인 11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나 올 8월 또 다른 백인청년이 텍사스주 엘파소 월마트에서 히스패닉계 샤핑객을 상대로 무차별 총기를 난사한 사건 등이 다 이런 범주의 혐오범죄라고 볼 수 있다.


총기범들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처음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나 8Chan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혐오 글들을 동질감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용자 취향을 근거로 전산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 생성되는 가짜뉴스나 악플 등에 중독되어 차츰 균형감각과 이성을 잃고 급기야 나하고 다른 부류의 사람에 대한 증오심으로 변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인터넷의 혐오발언들이 범행의 발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혐오 글들이 문제가 되자 검열을 실시하라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사회적 압력이 가중되고 있지만 큰 기대를 걸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연방 수정헌법 1조에 “연방의회는 종교의 자유를 비롯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정헌법 1조는 영국왕실의 폭정에 맞서 독립을 이끌어 내고 현대식 민주주의를 꽃 피워낸 미국인들에게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권리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궁여지책으로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올해 4월 혐오표현들을 어떤 식으로 검열해야할지 기준법을 제정해달라고 미국 의회에다 공을 넘기려 했다가 대중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불과 몇 달 후인 지난 10월엔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규제해선 안된다”고 태도를 바꾸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시대상에 따라 그 적용기준이 조금씩 변천되어왔는데 건국 초창기에는 공공의 안녕에 ‘나쁜 영향(bad tendency)’을 끼칠 수 있는 표현들을 주로 규제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1900년 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시에는 병역기피 조장을, 미국내 공산주의 확산과정에서는 공산화 지지 등 공익에 실질적인 폐해가 예상되는 ‘명백한 현재의 위험성(clear and present danger)’에 대한 규제로 법이 바뀌었다.

이 법은 다시 1969년부터 ‘임박한 무법 행동 (imminent lawless action)’에 대한 선동으로 적용 대상이 바뀌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즉 이 법에 따르면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야 한다든가 미국을 백인들만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표현 등은 임박한 무법 행동을 부추기는 표현으로는 볼 수 없어 제재나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게 사법당국의 판단인 것이다. 따라서 악플 류의 혐오발언들에 대한 처벌도 현행법 상으로는 불가한 실정이다.

인터넷 자정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면 시대에 따라 변해 온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해석이 나날이 도를 더해가는 혐오표현과 혐오범죄 양상에 부응하여 새로운 판례로 바뀔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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