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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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감수성

2019-11-19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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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동물 프로그램에 이상행동을 보이는 진돗개 2마리가 등장했다. 한 마리는 벌벌 떨면서 개집 밖으로 나오길 거부하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집에 안 들어오고 동네 밖을 떠돌았다. 주인이 아무리 살갑게 이름을 불러도 두 마리다 외면한다.

알고 보니 그 주인이 이 2마리의 어미개를 강아지가 보는 앞에서 개장수에게 팔았다고 했다. 수의사는 강아지들의 상태가 어릴 적 자기 엄마(개)가 죽는 모습에 상처를 받은,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같다고 했다.

개를 잘 모르면 웃긴다고 할 수 있지만 유기견을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들은 개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는지 잘 안다. 한국 시골에서 입양 온 강아지가 있다. 무슨 상처를 받았는지 사람의 손을 무서워하고 오토바이 소리에 오줌을 지렸다. 사람의 손길을 허락하는데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 개가 어릴 때, 친구네 수컷 개를 며칠 돌봐주게 되었다. 친구네 수컷 개가 우리 집 암컷 강아지를 험핑하며 괴롭힐까 고민했지만 한 번도 험핑을 하지 않으며 둘이 잘 지냈다. 그래서 친구네 강아지가 험핑자체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집 암컷 개를 만날 때 열정적으로 들이대는 모습에 보고 깜짝 놀랐다. 전문가에 의하면 개들의 세계에선 암컷이 허락할 때만 수컷이 가까이 가며 때론 어린 강아지는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개가 인간보다 더 나은 순간이다.

유기견 보호단체와 인연으로 우리 동네엔 한국에서 입양 온 유기견들이 꽤 있다.
처음 미국 와서 개들도 시차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오자마자 낮에는 얌전히 자고 새벽에 일어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새 가족들이 걱정하지만 한 달 정도면 적응한다. 그때 쯤 한국 개라 영어를 못 알아들음을 주인들이 발견한다. 개한테 영어를 가르친다. 때론 미국 가족들이 한국말을 배우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에 스페인어까지 3개 국어를 배우는 개들도 있다.

이렇게 언어도 배우고 새로운 집에 적응을 해도 가끔 개가 산책 중 특정 색깔의 자동차나, 특정한 나이의 동양 사람을 발견하면 막 달려가려고 한다.

울산 길거리에서 발견돼서 미국에 온 친구네 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정차만 보면 마구 짖어댔다. 푸들에게 물었다. “혹시 전 주인이 검정차를 탔니?” 또 다른 유기견은 40대 아시안 여성만 보면 달려가려고 했다. 그 개를 안락사 직전에 구해주고 돌봐준 사람이 40대 한국 아줌마였다.

동물은 동물이고 사람은 사람이라고 동물과 사람의 선을 긋는다. 하지만 동물, 그중에서 인간 옆에 가장 오래 살아온 개의 삶은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았다. 야생성이 사라져서 주인이 챙겨줘야 하는 의존의 관계지만 개들은 그런 의존을 신뢰와 무한의 사랑으로 갚는다. 

오늘도 내 옆에서 산책을 반드시 갈 거라는 믿음으로 날 보는 개를 본다. 그 뒤엔 엄마의 저녁이 맛있을거라는 신뢰를 하는 아이를 본다. 나는 개와 아이의 믿음과 신뢰에 답하기 위해 산책줄을 들고 요리책을 펼친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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