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과학 교수 랜디 파우쉬(1960-2008)는 췌장암으로 47세에 타계하기 10개월 전 행한 그의 마지막 강의(The Last Lec ture)에서 뭣보다 동심(童心)의 경이로움을 강조했다.
의학적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지 않았다 해도 이 세상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생물학적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태어났지만 그래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 입장에선 누구나 다 후손과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싶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빗 브룩스(David Brooks)는 그의 요청에 응답한 수많은 70세 이상의 독자들이 보내온 ‘인생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통된 교훈을 도출했다.
1, 연속과 단절
불행한 사람들은 시간을 연속된 흐름으로 보고 표류해왔나 하면 그 반대로 행복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몇 장으로 분류해 챕터(Chapter)별로 각자의 삶을 재설정 정립, 스스로의 운명을 바꾸거나 개척해왔다.
2. 반추와 성찰
불행한 사람들은 언짢은 일들을 계속 반추하면서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가 하면 그 반대로 행복한 사람들은 궂은일들은 속히 잊어버리고 용서하며 좋은 방향으로 되돌려 왔다.
3. 도로(徒勞)와 포기
불행한 사람들은 포기할 줄 모르고 전혀 가능성 없는 일에 매달리는가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아니다 싶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가능성에 도전한다. 특히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느냐 그렇지 못 하느냐의 차이다.
4. 안일과 모험
미인은 용자(勇者)의 차지라는 말처럼 안일을 도모한 사람은 모험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감행한 사람들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해한다.
5. 반골(反骨/叛骨)과 수용(受容)
가정이든 회사든 사회든 제도권 밖에서 ‘이방인’으로 떠돈 사람들은 불행하고 제도권 안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행복하다.
일제시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본인 여자 담임 선생님이 첫 수업시간에 해주신 말씀을 나는 평생 잊지 않고 살아왔다. 학생으로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인으로서도 말이다. 그 말씀이란 세 가지 학생이 있는데 숙제나 공부를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낙제생, 시키는 대로 하는 모범생, 그리고 시키기 전에 본인 자신이 알아서 잘하는 우등생이라고 하셨다.
영어에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에 대비하라(Hope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는 말이 있다. 최선을 희망하는 낙관론자이다 보면 실망할 일이 다반사고, 최악에 대비하는 비관론자이다 보면 자칫 패배주의에 빠져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낙관론자나 비관론자가 되기보다는 ‘만족론자’가 되기로 작심했다.
삶 그 자체가 목적이고 어떤 삶이든 열심히 살아보는 인생예술가 외에 다른 예술가가 있을 수 없으며 성공이란 결코 행선지 종착점이라기보다 여정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여정 그 자체가 전부로 곧 보답이고 보람이며 보상이 아니랴. 따라서 언제나 어떤 경우에도 승자는 노력하고 패자는 불평하지 않던가. 대학에 가야만 사람노릇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인생대학’의 학생으로 평생토록 자신의 인격을 닦고 자아완성의 길을 가는 구도자가 될 생각을, 그리고 취직보다는 창작할 생각을 해볼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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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