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마디즘

2019-11-15 (금)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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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삶이 열린 이래로 인간은 끊임없는 ‘노마디즘’(nomadism)을 통해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아브라함은 노마드적 삶을 살았던 최초의 히브리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함으로 노마드적 삶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노마드적 삶은 쉽지 않았다. 타 민족과의 치열한 대립과 식량난이 그들의 삶을 위협했다. 이때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개척과 모험을 추구하는 가나안의 노마드적 삶보다는 안정과 평안을 담보하는 애굽 땅으로 이주하였다.

애굽으로 건너온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호모 노마드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애굽 사람을 본받아 농업인의 정주적 삶을 살았다. 안정과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정주적 삶의 선택이 그들을 애굽의 노예 백성으로 전락시켰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말씀했다. ‘노예가 된 내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라. 시내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라.”
-자크 아탈리의 ‘유목하는 인간’ 중에서


뜨거운 도가니 같은 시내 광야는 생존하기 어려운 불모지다. 하지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의 멍에를 벗었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았고, 선민 백성으로 힘차게 도약했다. 히브리인에게 노마드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유목, 개척, 도약’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했다.

근대에 들어와 가장 모범적인 노마드 백성은 영국의 기독교가 낳은 필그림(Pilgrim Fathers)이다. 필그림은 영국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17세기 초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고, 신대륙을 향한 도약의 닻을 올림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면(面)의 사유’는 노마드 백성의 특징이다. 필그림도 노마드적 면의 사고를 통하여 ‘교류, 소통, 접촉’을 활성화 해 새 역사를 열었다.

플리머스에 정착한 필그림의 인구는 1630년까지 겨우 300여 명에 불과했다. 이 작은 숫자가 미국의 건국이념, 종교, 교육, 경제,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크 아탈리는 말했다. “노마디즘은 정주성으로 부패한 민족에게 주어지는 정화 작용이고 도약을 위한 새로운 기능이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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