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참의 대의명분과 노인 대망론

2019-11-13 (수) 오해영/ 전 뉴욕상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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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국수필문학전집에서 ‘참’ 에 대해서 정리한 글을 봤다. 참다운 참이란 삶은 참이라고 한다. 삶보다 더도 없고 삶 보다 덜도 없다. 삶은 거짓이래도 참이요 꿈이라도 사실이다. 그런 것들을 참이라고 했다.

우리네 인생은 참을 찾는데 몹시 인색한 것 같다. 스스로 살아가면서 되는대로 참을 찾기가 일쑤다. 특히 요즘 한국사회가 참이 소멸된 지 오래다.

우리 이민사회도 그렇다. 종교와 단체 그리고 문화예술에도 보이지 않는 갈등과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없는 지동지서(之東之西), 줏대 없이 갈팡질팡 하면서 참이 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추상적인 포퓰리스트적 명분을 내 세운다. 여기에 노욕(老慾)도 한 몫을 한다.
‘실낙원’을 쓴 영국의 대시인 존 밀턴은 노인이 걸리기 가장 쉬운 병은 탐욕이라 했다. 노욕을 경계하는 경구로 이보다 명쾌한 건 없다. 아집이 지혜를 대신하고 노쇠가 총기(聰氣)를 대신할 때 노욕은 싹트기 시작 한다. 나이가 반드시 지혜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법구경(法句經)에는 백발이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나이를 말한다고 적혀 있다. 작금의 사회는 청년과 중년에까지 노력 없는 탐욕이 상충하며 난마와 같이 얽혀있는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야할지 꿰뚫어 보면서 비전과 겸화(鎌和)와 겸근(謙謹)이 절실히 필요 한 때다.


그래도 뉴욕 한인사회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노인을 배려하는 젊은층의 마음의 양식을 높이 평가해도 과함이 없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인생 70을 무사히 채우기란 예나 지금이나 힘들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욕심에 어두워지지 않고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며 70 인생을 살기란 옛날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어려울 것 같다.

자연적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사회적 수명은 거꾸로 줄어든 듯 하지 않은가. 요즘 한국의 정치판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폭력적인 도구만 손에 들지 않았다고 할 뿐이지 일부 핵심 정치인들의 의식구조나 문화는 조폭과 거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의미의 엽기적인 현상은 한국 정치의 극심한 노화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판의 노장층들은 너무나 인색하고 권력욕에 가득해서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의 종파주의는 제도와 규범과 법치의 적이다. 결국 법치주의의 요체는 적과 친구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또한 실체가 불분명한 괴물 같은 사건의 뒷꽁무니만 정신없이 쫒다보면 어느새 괴물을 닮아 가는 우를 범하는 참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것이 한국 종파주의의 병폐다. 요즘 한국 정치권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쇄신론이 주를 이루면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볼 수 없는 정치 신인론 물갈이가 대두 되면서 현실 정치의 한 축을 차지한다. 그간의 노정치인의 쇠락한 정치 집단의 허무와 허탈감은 인생무상이다. 늙어 서러운데 그 좋은 옥좌까지 남에게 양보 하라니 이것이 구국의 결단이라면 노인의 대망론 앞에서 이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어찌 소의부탑일 수 있는가. 지는 해의 노을이 더 아름답고 타다 만 나무토막이 때로는 더 아름다운데…

<오해영/ 전 뉴욕상록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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