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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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2, 3세의 힘

2019-11-04 (월)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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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민족의 혼이다. 언어가 사라지면 민족정신도, 겨레의 정체성도 함께 없어져버린다. 일제 말기 내선일체(內鮮一體)란 구호아래 조선의 일본화를 획책한 일본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조선어말살정책(朝鮮語 抹殺政策)이었다. 학교에서는 조선어 시간을 없애고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쳤으며 우리말을 쓰면 체벌을 가하였다.

이은상, 한징, 최현배 등 여러 선각자들이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말 사전 편찬과 한글 보급에 매진한 것은 우리 말을 지킴으로써 민족정신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언어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화하고 진화하며 이동한다. 잘 가꾸면 건강한 생명체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언어로 발전하지만 돌보지 않고 내버려두면 사어(死語)가 되어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 언어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6500여종의 언어들 중 대부분이 금세기 안에 없어져 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말에는 민족의 혼과 체취가 배어있다. 우리말을 그 느낌과 분위기까지 그대로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 에 나오는 몇귀절을 예로 들어보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이 시를 영어로 옮기면 어떤 맛이 날까. 아무리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번역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말로 읽을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를 것이다.

말이 민족의 혼이라면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라 할 수있다. 한글은 그 독창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수한 표음문자(表音文字)이지만 1912년 주시경 선생이 ‘한글’ 이란 이름을 붙이기 전 까지는 ‘언문(諺文)’, ‘암클’, ‘아햇글’, ‘아침글’ 등 한결같이 업신여기는 이름들로 불리웠다. 언문(諺文)은 상놈들이나 쓰는 글이란 뜻이고 ‘암클’은 부녀자들의 글이란 뜻이며 ‘아햇글’은 어린 아이들이 쓰는 글이란 뜻이다. ‘아침글’은 아침나절이면 배울 수 있는 쉬운 글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어는 현재 남북한 7000만 동포 뿐 아니라 중국 조선족 자치주의 200만 조선족과 미국의 200만 한인, 60만 재일교포, 그리고 멀리는 사할린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까지 쓰는 중요한 언어이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으로 남북한간의 언어는 심각할 정도로 서로 달라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어름보숭이’라고 하고 ‘스킨 로션’은 ‘살결물’, 각선미는 ‘다리매’, 미소는 ‘볼웃음’이라고 한다니 남북한간 언어의 이질화가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 이민 와 있는 우리의 2세, 3세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융화되어가면서 우리 말과 글을 거의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람직 하기는 미국사회의 일원으로 살면서도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과 긍지를 갖고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언어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젊은 이들이 영어와 더불어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면 개인의 성공은 물론 미국사회에도 보다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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