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석유 다음으로 가장 많이 교역되는 상품이 커피라고 한다. 커피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구한말 개화기 외교사절을 통해서였다. 당시 커피는 발음을 한자어로 옮겨 가비차(加比茶) 또는 가배차라고 불리었으며 빛깔이 진해 탕약처럼 생겼다고 양탕(洋湯)이라고도 하였다.
서울 최초의 호텔 커피샵은 1902년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孫澤, Antoinette Sontag)여사가 정동에 지은 손탁호텔 커피샵이다. 호텔 커피샵이 아닌 전문 다방이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3년경의 일이다. 지금의 충무로3가에 일본인이 '후타미(二見)’란 찻집을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다방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은 찻집을 깃사텐(끽다점, 喫茶店)이라고 불렀다.
한국인 최초의 다방은 영화감독이던 이경손이 1927년 관훈동에 차린 ‘카카듀’ 다방이었다. 한국인들은 찻집을 깃사텐이란 일본식 이름 대신 다방(茶房)이라 불렀다. 1930년대 들어 영화, 연극인, 화가, 음악가, 문인 등 예술인들이 앞다투어 다방을 열기 시작하였다.
천재시인 이상은 1932년 종로에 식스나인(69)이란 외설적인 이름의 다방을 차렸다. 이상은 의자를 앉으면 푹 꺼지게 만들어놓고 손님들이 그 의자에 폭 파묻혀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싱글거리며 웃었다고 한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커피, 설탕 등의 수입이 막혀 많은 다방이 문을 닫아야 했으며 2차대전 말기인 1945년경에는 거의 모든 다방이 폐업하였다.
6·25전쟁 직후 전쟁으로 문화시설이 부족해지자 다방은 단순히 차를 마시고 쉬는 장소에서 벗어나 그림 전시회, 문학의 밤, 음악회 등이 열리는 예술의 장소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1970년대 다방은 그 절정기를 맞아 전국적으로 3만5,000여개의 다방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진한 화장을 하고 쟁반을 들고 다니는 레지들과 카운터에 앉아 돈을 받거나 전축을 틀어주는 얼굴마담이 손님을 맞았고 차값을 더 내면 홍차에 위스키를 타주는 위티나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어주는 모닝커피도 마실 수 있었다. 대학주변 다방에서는 커다란 유리창이 달린 좁은 방안에서 DJ가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멘트를 날리며 신청곡을 들려주었다.
다방은 1990년대 말부터 스타벅스를 본뜬 커피전문점들이 생기면서 점차 밀려나더니 지금은 서울거리에서 다방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덕소나 미사리 같은 교외 경치 좋은 곳에는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추고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경치를 내다볼 수 있는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들어서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미국의 맥도날드 햄버거 식당은 한인들이 만남의 장소로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한인 노인들이 한잔에 70센트 하는 시니어 커피를 앞에 놓고 친구들과 부담 없이 담소를 나누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다. 너무 장시간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면 때로 종업원에게 쫓겨나기도 하지만 맥도날드는 여전히 한인 시니어들이 즐겨 찾는 ‘맥다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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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