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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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 엄마

2019-10-02 (수) 나정자 / 뉴저지 레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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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aterboys!’ 스페인에 도착해서 호텔로 가면서 물통 들고 가는 작은 아들 뒤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제법 딴딴하고 길죽한 다리의 아들들이 사랑스럽고 많이 듬직한가 보다. 미술 교사로 일하는 딸아이가 여름방학과 자기들 결혼 20주년 행사로 스페인을 여행하는 중이란다.

어느덧 세월도 많이 지났고 많이 컸구나 싶은데, 처음에 낯설고 물 선 이곳 미국으로 유학오는 유학생의 딸, 아들로 등가방 달랑 메고 가족 소풍가듯 따라왔던 아이들이 이제 이 나라 미국인이다.

‘그래 오늘 학교에서 무얼 배웠니?’ 뉴저지 매디슨 두루신학교 기숙사에 얼떨떨과 함께 짐을 푼 우리 네식구는 말 그대로 똘똘 뭉쳐진 한 덩어리! 하루를 지낸 저녁이면 우리 네식구 모두는 다음날을 채비하며 마치 ‘비상 대책 회의’를 하듯 했다.


영어회화를 가르치며 ‘how are you?’를 묻는 Mrs. Myers 에게 교과서 대답대로 ‘I’m fine, thankyou’ 하면 될 것을, 항상 ‘I’m no fine, no fine!’ 을 잠꼬대 같이 읊어 댔다는 딸아이는 학교에서 얼굴이 노오래져 집에 들어 서자 마자 마구 구역질 하기가 일수였고 작은 아이는 ‘그래 학교에서 오늘은 무얼 배웠니?’ 하면 늘 자고 왔단다.

그런 한동안을 지나던 중, 둘째가 ‘Sammy had a supper day, today!’ 라고 쓴 작은 스티커가 붙은 카드를 받아 가지고 왔다. 사연인즉 오늘 ‘may I go to bathroom?’ 벙어리 인줄 알았던 아이가 입을 열어 선생님께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밤낮 누워 골골하던 할배가 집에 큰 불이 나자 아뿔싸! 번쩍 쌀가마를 들쳐메고 나왔다던가. 학교가서 매일 자고 온다던 긴장 속에서 꽉 붙어버렸던 입이 얼마나 급했으면 스티커 카드를 물고 오게 되었던 것일까!
또 두어달 지나자 큰 아이가 가을 음악회때 합창 반주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토리 제이 초등학교에 그렇게 마음을 붙이면서, 한쪽 눈이 거의 찌그러 질 정도로 노다지 윙크로 다가오는 Dr. 뉴하우스 교장 선생님께 나도 얼마나 재빨리 번개같은 ‘눈 인사만! 대화는 사절!’ 하며 숨을 고르곤 했던가!

잠시 잠깐의 만남에서도 그 매낀매낀한 영어란 게 빨리 빨리 나오질 않고 입안에서,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며 명사 동사 형용사 순서 찾아 맞추느라 쭈물거리는 동안 교장 선생님의 윙크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었지 않았던가.

그러니 하루 종일을 미국 아이들, 미국 선생님들과 지내다 저녁이면 다시 오리지널 한국인으로 돌아와야 하니 그 이중 문화를 딛고 서야하는 아이들이야 말로 얼마나 바빴을까!
그러면서 우리는 바짝 익어야 먹던 얇은 소고기를 이젠 반쯤 익힌 덩어리, 소위 ‘미디엄 스테이크’를 즐겨 먹고 있는 것이다.

지난(2018년) 추수감사절 때다.
푸근푸근 잘 구워진 칠면조에 새콤달콤한 크랜베리 소스, 노오란 파인애플과 계피향으로 치장한 달큰한 돼지 넙적다리며, 알록달록 샐러드, 피캔파이, 펌프킨 파이며 진한 향기의 구수한 커피등 ... 한참 화려한 감사절 디너를 마치고 둘러 앉은 자리에선 그럴싸하게 옛날 얘기가 펄러덩 거리기 시작하는데. 40후반에 있는 딸내미의 reflection 이었다.

9학년이 되어서 girl’s soccer 팀에서 뛰게 되었는데 동양 여자로는 혼자였다. 자기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고 또 때로는 다른 곳에 가서 시합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면 다른 애들 엄마들은 미리 미리 와서 데리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지 않나, 아니면 시합장소까지 와서 응원하며 데리고 가질 않나 여간 열심인 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 회고는 이제 부터 였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라이드는 커녕, 온통 한참 윗언니쯤 될만한 큰 체격의 미국 아이들과 겨루는 축구 시합 마치고 잔뜩 지친 몸을 끌고 집에 까지 걸어온 딸에게 ‘내가 몇번이나 말했냐. 그 축군지 뭔지 고만두라구. 무슨 여자가 축구란 말이냐!’ 고 야단 야단에 엄한 죄인취급을 받았었다”는 거였다.

그게 그저 문화적인 이해 차이일뿐 아무런 고의는 없었다는 것은 40대 후반의 그에게나 70후반의 이 에미의 심중이 똑 같았을 지라도 뭔가 좀 부언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였지만 조금 망설였었다고나 할까. 어찌됐던 영락없는 Amy Tan의 The Joy Luck Club의 한국판이 여기 지금 우리집에서 재연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딱 이 아이 나이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였다.

특별활동반인 발레반에서 나는 한참 발레리나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한쪽 팔로 바를 잡고 서서 반듯이 허리를 펴 세우고 제법 곧게 자란 다리를 굽혔다 뻗어 올렸다 한쪽 까치발로 뱅그르 돌기를 얼마나 했을까. 잘 맞지않는 연습용 토슈즈에 벗겨진 발 뒤꿈치는 또 얼마나 쓰리고 아팠던지. 넘어지는 게 주제인양 엉덩방아는 또 얼마나 찧었던가.

오랜 연습을 통과하고 마침내, 마침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며 ‘호두까기 인형’ 등에서 착각하리 만큼 잘 훈련되어 쭈ㅡ욱 뻗는 팔 다리에 천사같은 새하얀 깃털 날개를 가진 백조로 등장해야 했다. 새하얀 타이즈에 토슈즈를 신고 새하얀 깃털을 입은 천사같은 백조여야 하는데.

발표회날이 다가왔다. 백조여야 할 내게 이씨조선 유림사상으로 다져진 내 엄마는 “우리 집안은 그런거 없다. 백조는 무슨 백조! 여자가 무슨 무대에 올라 서서 다리를 쩍쩍 번쩍번쩍… 우리 집안에는 그런 것 없다!” 이셨다.

반년이 넘도록 꾸어왔던 발레리나의 백조의 꿈은 그렇게 500년 전통의 유림의 서릿발 아래서 그 날개를 접어야 했었다.

그저 살아온 시대를 넘어서지 못하던 안방 마님들의 소견들일 뿐이다. 그럴지라도 그것들이 대를 흐르며, 때로는 그 시대 문화의 증인으로 ‘어제와 오늘, 어미와 딸, 역사와 문화’ 사이를 조명해 보게 하는 것 아닌가!

‘엄마, 이 샐러드 괜찮쵸? 상큼하죠? 엄마 나물맛 하곤 다르지만.’ not fine이 아니라 ‘no fine’ 을 달고 다녔던 딸내미의 등장이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다.

<나정자 / 뉴저지 레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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