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족의 얼과 뿌리

2019-10-02 (수) 여주영 고문
크게 작게
오늘날 전 인류가운데 유대인은 불과 1,200만 명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만큼 세계에서 화제가 되는 민족은 드물다. 노벨상만 보아도 인류역사에서 핵심이 되는 물리, 화학, 의학 분야중에 수상자가 12% 이상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 유대인이 오늘날까지 종교, 과학, 문학, 음악, 경제, 철학 분야에서 인류사회에 공헌한 업적이 실로 엄청나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유대인의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문화는 무수히 있어왔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희랍문명도 결국 쇠퇴하고 말았다. 또 강대하고 융성했던 로마제국도 위대한 유적은 많이 갖고 있었지만 끝내는 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유대인의 문화는 아직도 4,000년 가까이 소멸되지 않고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유적이나 유물을 한 곳에 남기지는 않았다. 성서와 함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인류사회에 공헌하며 제 나라를 굳건히 지켜왔다. 희랍과 로마 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온갖 부침을 당하며 방랑생활을 해왔지만 살아남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집트 역시 융성했지만 결국 쇠퇴하고 말았다. 유대인은 나라가 없어 문화유적을 남길 곳이 없고 힘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결코 놓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들의 문화를 주고받으며 계속 전수해온 것이다.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이런 노력이 오늘날 그들을 세계에서 으뜸가는 민족을 만들었다.
‘문명은 사라져도 문화는 남는다’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강국을 만드는 데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수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것이고 단기적일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강력한 문화의 힘이 있어야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한민족은 지금도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숱한 간섭을 받고 있다. 이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끝까지 한민족 고유의 문화를 지키고 전수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들도 아무리 고국을 떠났어도 민족 고유의 문화를 굳건히 지켜나가야만 수많은 민족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한인들은 대체로 미국에 이민 와 돈벌기에 급급하다 보니 문화라는 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대우받고 살고 후세들이 당당하게 살자면 한민족의 얼과 뿌리가 담긴 고유의 문화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본보가 뉴욕한인회와 함께 매년 맨하탄 중심가에서 ‘코리안 퍼레이드’를 대대적으로 펼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자랑스런 문화민족임을 세계속에 알리고 미국사회에 한인커뮤니티의 힘과 저력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올해도 지난달 24일 LA 한인사회에 이어 오는 5일 뉴욕에서도 약 200개 한인단체가 참여, 한민족 고유의 문화를 성대하게 펼친다. 태극기를 흔들며 자랑스런 한국 문화를 미국사회에 알리는 것은 뜻 깊은 일이고 미국땅에 한인들의 자존심과 위상을 드높이는 길이다.

문화의 힘은 어느 것으로도 잘라지지 않고 소멸시킬 수 없다. 아무리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처럼 국가와 민족, 커뮤니티를 지켜내는 힘이 바로 문화이다. 한국의 역사가 많은 외세의 침입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얼과 뿌리가 강하게 심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도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 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여주영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