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과 9.11, 두 날 다 역사적인 날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인생에 큰 상처와 그 흔적을 남긴 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본인은 9월이 오면 이 두 날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1950년 9월28일은 6.25 전쟁에서 잊지 못할 날, 서울이 탈환되는 기쁜 날이다. 당시 나는 서울에 살았다. 우리는 무서운 공산 치하에서 삼개월을 견뎌야 했다. 9월15일 맥아더 장군 작전으로 미 해병대의 인천상륙의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아버님은 알지 못할 병으로, 의사도 약도 없는 상황에서 고열로 누워계셨다.
9월27일에는 드디어 아군이 한강을 넘어 서울로 진격해 왔다. 우리 동리가 해방되던 날 나는 인근 학교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소식을 의식을 잃고 있는 아버님께 큰 소리로 알렸다. “미군이 왔어요. 학교에 태극기가 걸려 있어요” 아버님은 잠시 눈을 뜨시더니 “우리도 태극기를 내다 걸어라” 한 마디 하시고 다시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아궁이에 숨겨두었던 태극기를 내다 걸었다.
그날 밤 10시에 아버님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9월28일, 서울이 수복되는 기쁜 날이었으나 효창공원에 아버님을 묻고 돌아오는 우리 가족은 앞날이 캄캄했다. 우리 가족은 살아남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4형제가 모두 미국에서 이민교회를 목회하는 목사 가정이 되였다.
그로부터 66년 후. 2001년 9.11 태러 사건이 나던 날, 나는 미국 피츠버그에 있었다. 연합감리교회 피츠버그 지역 주제 감독 (Resident Bishop) 으로 920교회 20만 성도를 돌보는 목사였다.
쌍둥이 빌딩, 워싱턴 펜타곤이 공격을 받았고 이어 바로 사무실에서 100킬로 떨어진, 내 관활 아래 있는 생크스빌 에 UA 93번이 추락했다는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우리 뒷뜰에 떨어진 셈이다. 그 지방의 감리사와 연락하고 교회에 모여 기도 하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수요일에는 각 교회 마다 많은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보았다. 나는 가까운 큰 교회에서 예배를 소집하고 설교를 하게 되었다. 이런 비통한 역사적인 순간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기억나는 성경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 가실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부르짖은 말씀이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즉시 오지 않았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부활의 아침까지 사흘을 기다려야 했다.
이제 18년이 지난 간 오늘 그 대답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결의를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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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종/목사·전 연합감리교회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