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학교성적 좋은게 잘못인가요?

2019-09-25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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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올 상반기 뉴욕시 교육계 키워드 중 하나는 드블라지오(de Blasio) 뉴욕시장이 추진한 뉴욕시 특목고 입학시험(SHSAT)의 폐지 시도였다고 할 것이다.

시험을 거쳐 뉴욕시 특목고에 경쟁입학한 60% 이상의 아시안 학생 편중현상을 완화, 인종의 다양성을 꾀한다는 명분하에 시도한 것이었지만 아시안 커뮤니티와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추진한 결과 오히려 아시안 아메리칸 차별이라는 반감만 불러일으키고 뉴욕주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드블라지오 시장은 이어 아시안 학생들이 많이 등록되어 있는 영재교육 프로그램(Gifted and Talented pro gram)의 폐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래저래 차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뉴욕시 외에서도 아시안계 학생들에 대한 차별문제로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데 그 중 대표적 사례가 현재 보스턴에서 진행 중인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 하버드대(Students for Fair Admissions v. Harvard) 사건이다.

올 여름쯤으로 예상되었던 1심 재판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지만 어떤 판결이 나오든 양쪽 다 항소방침을 밝히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 스토리는 1990년 휴스턴에 살던 유대계 증권맨 에드워드 블럼(Edward Blum)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이 살던 지역구에 공화당 연방하원 후보로 출마한 블럼은 선거활동 중 지역구의 경계가 인종에 근거하여 민주당에 유리하도록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선거패배 후 텍사스 주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 지역구의 경계가 헌법 상 용납될 수 없을 정도로 기형적 분할이었다는 걸 입증해 승소했다.
블럼은 승소 후 여러 보수 시민단체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인종에 근거한 선거구 분할, 소수계 우대 대학 입학정책인 어퍼미티브 액션(affirmative ac tion) 등 인종 계층화 반대소송을 왕성하게 전개하였다. 2008년엔 백인 여학생 애비게일 피셔(Abigail Fisher)를 내세워 텍사스 주립대(UT Austin)가 어퍼미티브 액션을 통해 백인학생들을 역차별 했다는 소송을 진행했다가 대법원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대법원 소송 엔지니어로 변신한 블럼회장의 최신 작품이 위의 하버드 사건이다. 그는 텍사스 주립대 재판을 통해 터득한 몇 가지 소송전략을 하버드 사건에 구사했는데 바로 백인대신 아시안계 학생들을 소송 전면에 내세운 점이다.

블럼은 하버드의 제도연구소(Office of Institutional Research)가 2013년 하버드대의 입학처장인 윌리엄 피츠시몬스(William Fitzsimmons)에게 제출한 리포트를 입수, 증거물로 제시했는데 그 내용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 리포트에 의하면 만약 학업성취도만을 유일한 하버드 입학기준으로 삼을 경우 아시안 학생의 입학률이 신입생의 43%를 차지하지만 하버드동문 자녀에 대한 가산점 및 운동선수 가산점 등까지 고려한다면 그 수치가 31%로 하락하고, 과외활동 및 개인 인성 점수를 고려하면 26%, 마지막으로 인구적 요인까지 더하면 18%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2013년의 아시안계 하버드 신입학생 비율이 19%였는데 이 리포트의 예측과 얼추 맞아 떨어진다고 보면 백인학생들과 비교해 아시안 학생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아울러 이 수치는 입학사정 시 학생의 인종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UC 버클리(UC Berkeley), UCLA, 칼텍(Cal Tech)등 서부 명문대에서 40%를 상회한다는 아시안계 학생 통계와도 별 차이가 없어 증거력을 더해준다.

재판 중 제시된 또 다른 하버드의 내부자료에 따르면 1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보내지는 하버드대 지원 초청장의 컷오프도 백인학생은 PSAT에서 1310, 아시안계 여학생은 1350점, 아시안계 남학생에겐 1380점으로 기준을 달리 적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평한 실력주의를 바탕으로 삼는 아메리칸 드림과 인종백화점 이민국가 미국의 다양성 사이에서 미국 교육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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