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인

2019-08-27 (화) 노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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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우리 2세, 미 주류사회에 들어가다.’ 한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까만 서류가방을 멘 말끔하게 차려입은 백인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떠 올리곤 했다.

그 ‘주류사회’에 흑인이나 멕시칸 또는 중국인을 생각하지를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내 자녀가 주류사회 즉 잘 나가는 백인들 틈에 끼기를 원했다.

37년 전, 친구들이 “너 미국가서 파란 눈 노랑머리 남자랑 결혼하는 거 아냐?” 했었다.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인줄 알고 왔으면서도 흑인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으며, 중국사람과 남미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것에 놀랐고 좀 실망을 했다.


우리는 이웃 집 백인에겐 필요이상으로 웃음을 보이며, 흑인이나 스패니시를 경계하고 멸시하고, 빨간색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는 중국 사람들을 깔봤다. 그런데 요새 또 한 번 놀라고 실망을 한다. 이제는 오히려 백인이 두려운 것이다. 백인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처음부터 백인들이 이 땅의 원주민들에게도 행한 일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본다.
먹고 살자고 바다 건너온 사람들에게 새 땅에서 사는 방법을 성심껏 가르쳐 준 그들의 땅을 빼앗고, 죽이고, 가두어 폐인이 되도록 내버려 둔 사람들이다.

“Go Back”이라고?” 아메리칸 인디안의 10대 후손쯤 되는 한 정치인이 “만일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우리다.”라고 했다.

우리 눈엔 다 백인으로 보이는 유대인들 회당을 일부러 찾아가서, 히틀러처럼, 그들을 죽이고, 워낙 엘 파소의 주인이었던 스패니시들을 스패니시라서 죽이는 백인들이다. 불법 멕시칸을 막으려면 ‘쏴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자 깔깔거리고 웃던 백인들. 대통령도 씨익 같이 웃었다.

샬로츠빌 사건 당시, 자주 TV화면으로 보던 ‘백인우월자들 (White Supremacist)’. 횃불을 쳐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그들이 또 언제 어디서 불쑥 나타날지가 무섭다.
그럼에도 이민자의 나라 대통령이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백인우월주의자’를 얼버무리며 감싼다.

그 옛날 한 없이 미국을 동경하던 한국인들, 후에 좀 잘살게 되었다고 모국 방문 온 이민자들에게 ”미국거지” 소리를 하던 한국의 한국인들. 이제 또 한국에 전쟁이 날까봐 먼 친척이 사는 미국으로 오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미안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다. 평화와 자유의 나라로 알았던 미국이 요즈음에 참 살벌하기만 하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기관단총을 들고, 이 나라 최고 권력자를 빽으로, 백인이 최고라는 그들 눈에 아니꼽게 보이는 이민자들을 향해 언제 어떤 무서운 일을 벌일 런지…..
공연히 백인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 같다.

<노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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