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쏠 권리와 살 권리

2019-08-23 (금)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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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의료보험을 갖게하는 데에는 기를 쓰고 반대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총을 갖게하는 데에는 왜 그렇게 열심인지 모르겠다. 해마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수백명의 무고한 목숨이 스러져 가도 총기 규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있으며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규제방안도 아직 나오지 않고있는 실정이다.

근래들어 총기난사 범인들의 범행 동기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불길한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전에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특정인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나 정신 이상자들이 개별적으로 제한 된 장소에서 범행을 저질렀지만 근래에는 반이민 정책과 맞물려 유색인종과 유대인을 혐오하는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행이 계속되고있다.

이들은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표적으로 정한 후 그곳이 교회이건, 수퍼마켓이건 거리의 광장이건 가리지 않고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총기규제가 논의될 때마다 NRA를 비롯한 총기소지 옹호론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들고나오는 수정헌법 2조는 ‘규율을 갖춘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 정부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되어있다. 즉 총기 소지를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정헌법 2조는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법치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아 별도의 민병대를 필요로 했던 독립전쟁 당시나 서부개척 시대에나 필요한 조항이다. 오늘날과 같이 정부의 공권력이 모든 분야에 골고루 미치는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조항인 것이다.

총기난사 사태의 근본적인 방지책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민간인들이 총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방안이 논의될 때마다 총기구입자의 백그라운드 체크를 강화한다든가 살상력이 강한 공격용 무기의 사용을 금한다든가 매가진의 크기를 제한한다든가 하는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방법만 제시될 뿐 민간인의 총기소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나라는 군대가 지켜주고 치안은 경찰이 유지해 주는데 민간인이 총기를 소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민간인 총기소지를 금하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총기사고가 거의 전무하지 않은가. 민간인 총기소지를 허용하는 한 총기난사 사건은 막을 수가 없으며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미국의 건국이념인 독립선언서에도 명시되어있듯이 인간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은 조물주로부터부여받은 양도할 수 없는 기본권이다. 수정헌법 2조의 총기소지 권리도 중요하지만 쏠 권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살 권리인 생명권이며 행복추구권이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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