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얼렁뚱땅

2019-08-20 (화)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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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못해 본 나지만 결혼식 주례는 진짜 많이 했다. 내가 해 보지도 못한 결혼을 갖고 결혼하는 젊은이들에게 결혼생활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훈수를 둔다. 천주교는 결혼을 준비하는데 일년 가까이 한다. 그냥 몇 달만에 결혼을 안 시키는 것이 한번 혼인성사로 묶이면 혼인의 끈이 절대로 안풀린다고 믿기에 결혼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결혼식 준비를 위해 만나는 커플마다 눈이 반짝 반짝 거리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면 참 탐스럽고 부럽다. 내가 혼인서류에 이름이나 주소를 받아 적을려고 고개를 숙일라면 그새를 못참아 서로 손을 만지고 얼굴도 만지고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그냥 좋은 것이다. 눈이 반짝 반짝 거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결혼만 시켜 놓으면 일년도 못 가서 그 반짝이던 눈이 케츠므레 멍해지고 별같이 반짝이던 눈이 물간 생선 눈알같이 된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 보면 무담담 잘 지낸다고 하며 지나쳐 버린다.

한 번은 첫 결혼 미팅 때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서로 손을 만지고 어깨를 주무르고 하던 커플이 몇 달이 지나 두 번째 미팅 때 오지를 않아 전화를 했더니 울면서 자기들 헤어졌다고 한다. 기껏 몇 달도 가지 못하면서 사랑이니 결혼이니 한 것이다. 이처럼 변함없이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좋고 편할 때 누가 사랑 못하나 그러나 끝까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10년도 넘은 오래 된 이야기이다. 미국인 젊은 커플을 결혼시킨 적이 있다. 결혼을 한다고 약혼자를 데리고 와서 혼인준비를 시키는데 뭔가 불안하고 뭔가 찜찜하지만 그렇다고 안 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멋지게 결혼시킨 것까지도 좋은데 1년도 채 되지 않아 신랑이 나타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애 영세를 시켜 달란다. 그런데 이게 아무리 봐도 내가 결혼시킨 그 여자가 아니라 다른 여자와의 애인 것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아 미치겠다. 어떻게 다른 여자와 애를 낳아 가지고 와서 그 영세식을 해달라니 말이다. 참 어쩌나! 그래서 고심과 고심끝에 애가 무슨 죄야 하며 영세식을 내가 해 버렸다. 그러면서 조용히 아무 일도 없이 모든 일이 사라져 버리기를 마음속으로 불안히 기도했다. 그러나 역시 조용히 지나갈 일이 아니다. 며칠 후에 울고불고 본 부인이 나를 찾아 왔다. 그러면서 내 앞에서 마구 운다. 그녀가 하는 말이 너는 내신부 (You are my priest!) 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는데 참 어쩌나!

참 그렇다. 결혼을 시킨다고 일년 가까이 만나 왔으니 그녀와 나 사이에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다른 여자와 낳아 온 아이를 말도 없이 영세 시켰다는 것을 듣고서 참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미리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하고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달랬어야 했는데 나도 당황하니깐 어떻게 해 버리고 숨어 버릴려고 한 것이다. 아니면 너무 골치 아픈 그들의 부부생활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어서 사라져 버려라 하면서 영세를 시킨 줄도 모른다.

평소의 얼렁뚱땅 대충 해 버리는 나의 삶의 자세가 나온 것이고 사목적으로 빵점이라 생각하니 참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러면 안된다. 결혼은 거룩한 서약인 것이다. 혼인의 거룩함을 더럽혀서는 안된다. 하느님 앞에 맺어진 약속을 저버리면 안된다. 끝까지 사랑을 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다.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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