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픈 사람

2019-08-17 (토)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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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떤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하고 우리가 보는 TV의 약 광고를 본다면 지구란 곳은 아픈 사람들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복통에는 이런 약 두통에는 저런 약 근육통과 월경통에는 무슨 약 사지와 등과 가슴과 허리 아픈 데는 무슨 무슨 약이 좋다며 음악까지 곁들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의 아픔을 표현하는 언어의 자원은 매우 풍부한 것같다. 지끈지끈 아프다, 살살 아프다, 쓰리다, 쑤신다, 쏜다, 결린다, 빠개지는 것 같다, 뒤틀린다, 도려내는 것 같다, 치민다, 욱신욱신하다 찢어지는 것같다, 심지어는 시큰시큰, 새큰새큰 아프다는 말도 있다.

구약성서의 욥이라는 인물은 그의 아픔을 견딜 수 없어서 “내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나의 어머니가 나를 잉태한 밤을 저주한다” 라고 표현했다. '겉으로는 아픈 데가 없는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조용한 아픔을 지니고 산다'고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말했다.


의학에서는 아픔을 통증이라고 하여 어떠한 병의 증세로 간주하고 그 아픔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병 중에는 아픔을 느끼지 않고도 생기는 병도 있지만 만일 사람에게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은 죽을 병에 걸리고도 그런 줄 모르고 다닐 것이며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의술의 표준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흥미있게도 몸에 아픈 곳이 있는 사람이 의사에게 찾아가도 별 뚜렷한 진단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다. 아주 발달한 최신 검진기구로도 아픈 원인을 찾아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항상 아프다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남의 아픈 것을 대신 느낄 수는 없다. 언제나 나혼자만이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아픔은 일종의 주관적이고 사적인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아프다” 라는 표현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아픈 행위를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간은 몸만 지니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지니고 사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아픔은 몸에만 해당하지 아니하고 마음에도 해당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처럼 잘사는 사람들 틈에서 남만치 잘살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아픔을 느끼며 산다. 서로 미워하는 관계를 가진 두사람은 서로에게 아픔을 줄 수 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잃었을 때 가족의 갑작스런 사망,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 것을 볼 때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느낀다.

물속의 상어는 7분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질식해 죽는다고 한다. 아픈 사람은 아플수록 몸을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탄식과 아픈 소리를 울려야 할 것이다.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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