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부님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2019-07-18 (목)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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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 방문을 하러 가서 기도도 해 주고 성사도 주고 위로도 하고 해서 뭔가 주러가는 듯하지만 사실은 갈 때마다 꼭 무엇인가 받아 온다. 병원이나 너싱홈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마다 마음속이 따뜻해지고 인생을 달리 살아야지 하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이리 저리 핑계를 되면서 한달 넘게 병원 방문을 못했다.

게으름 속에서 헤어나 한참 후에 방문한 너싱홈에 한 나이든 형제가 질책을 한다. “신부님!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어디 갔다 오셨어요.” 애기처럼 투정을 한다. 연세는 많으신데도 꼭 어린애 같으시다. 나는 당황하여 왜 나를 그렇게 찾았나 하며 뭔가 일이 있었느냐고 하며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또 몇 달이 갔나? 또 게으름을 피우다가 너싱홈에 들른 나는 그 형제를 찾았다. 그런데 같이 간 레지오 단원이 하는 말이 그 분 이미 돌아가셨어요. 마음이 마구 무너진다. 왜 내가 몰랐을까? 그 형제가 돌아가시고 주변의 성당에서 내 친구신부가 장례를 치루었단다.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냐고 수녀님과 레지오 단원에게 따져 물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마음속이 아른거렸다. 그 분 가시는 길 내가 함께 해 드리고 싶었는데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그의 임종을 지켜 보지도 못했고 미사도 함께 하지를 못했다. “신부님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어디 갔다 오셨어요.” 그 말이 귀에 아른거린다.


새 신부가 되어 정말 병자성사 기름과 성체를 모시고 열심히 병원들을 누비고 돌아 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날을 4 ~5 년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는 일이 없었다. 한 번은 병원 복도를 헤지고 다니는데 갑자기 한 미국할머니가 내 팔을 잡으면서 자기를 보잔다. 그 할머니 옆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에 다가가니 그 분이 내 손을 잡고 그냥 울어버린다. 젊은 동양신부 손을 잡고 울먹거리는 할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병원 로비에서 지나치면서 힐끗힐끗 쳐다본다.

나는 나의 사제직이 얼마나 무섭도록 힘이 있는지 또 한번 깊이 깨달은 순간이었다. 교회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플어 주었는지 나같은 싸구려 질그릇에 얼마나 엄청난 사제직이라는 보화를 담아 주었는지 말이다. (코린토 2서 4:8-11) 나보고 울어 버린 휠체어의 그 할아버지, 평생을 카톨릭 신자로 살아 오신 분일꺼야?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드셨을까? 나는 그 분도 그렇게 스쳐 지나 갔다.

또 다른 미국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루었다. 6개월 넘게 그 할아버지의 병실을 방문했다. 자주 젊고 이쁜 딸이 함께 있어서인지 항상 웃어주고 반겨주는 할아버지가 좋아서인지 그 병실을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곧 그분이 돌아가시고 내가 장례를 했다. 묘지에 가서 할아버지를 묻고 한 사람 한 사람 다 떠나가는데 이상하게 내 발길이 떠나지를 못한다. 보통 때 같으면 휑하니 가버리는 나인데 그날은 아마 마지막까지 묘지에 남은 것이 나였던 같다.

그 이후 젊은 딸의 카드가 성당에 배달됬다. 마지막까지 아버지를 지켜 준 나에게 너무 고맙단다. 아버지가 나에게서 진실된 사제의 모습을 봤고 항상 나의 방문을 즐겼다고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 카드를 사진 액자에 담아 잘 넣어 놓았다. 내가 너무 너무 힘이들고 지쳐서 더이상 못할 것 같을 때 꺼내볼 작정이다. 며칠 전에는 92세의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 보았다. 할머니 둘레에 온 가족이 둘러 섰고 어쩔줄 모르고 감정에 복받친 가족들을 내가 기도로 이끌었다. 92년간의 삶의 마지막 완성을 바라보는 것 같은 정말 한 마디로 엄청난 순간이다. 가족 한 사람 한사람이 할머니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린다. 어머니에게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가족을 보면서 아! 나! 참 잘했구나! 내 직무를 잘 수행했구나 안도해 한다. 가족들이 너무 고마워 한다.

이 맛에 사제직을 수행한다. 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병실을 나오는 내 발길이 가볍고 너무 감사하다. 나의 사제직이 말이다!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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