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첫 주택구입자 울리는 부동산 투자자

2019-07-18 (목)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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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값 오르는데도 투자성 구입 큰 폭 증가

▶ 인터넷 매매 서비스 통해 타주에도 진출

첫 주택구입자 울리는 부동산 투자자

큰 폭으로 늘고 있는 부동산 투자자들의 주택 매입이 실수요자 매물 부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AP]


부동산 투자자들에 의한 주택 구입 비율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꾸준한 주택 가격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플리핑과 임대 목적을 가진 투자자들의 주택 구입 열기가 더욱 과열되고 있다는 보도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부동산 시장 조사기관 코어로직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대규모 ‘사모 펀드’(Private Equity Fund), 투기 성향의 투자자, 일반 투자자들이 지난해 사들인 주택 비율인 전체 주택 거래의 약 11%로 사상 최고 수준을 넘어섰다.

◆ 투자성 구입, 2008년 이전 2배

지난해 투자자들의 주택 구입은 투자성 구입이 가장 활발했던 2008년 이전 수준보다 약 2배를 넘어선 규모다. 일부에서는 투자자들에 의한 주택 구입 증가로 밀레니엄 세대 등 첫 주택구입자들의 주택 구입이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투자자들의 경우 대부분 현금 동원력을 앞세운 ‘캐시 오퍼’를 통해 주택 구입에 나서기 때문에 주택 구입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젊은 층 구입자들이 주택 구입 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투자 기관의 대규모 주택 구입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블랙스톤 그룹’(Blackstone Group LP)과 ‘스타우드 캐피틀 그룹’(Starwood Capital Group)과 같은 대형 투자 기관은 주택 시장 폭락 직후 헐값에 쏟아져 나온 급매성 주택 매물을 수천 채씩 싹쓸이하다시피 매입한 바 있다. 경제 및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이들 투자 기관들이 신용 경색으로 모기지 대출이 꽉 막혔던 당시 현금 구입을 통해 주택 가격 폭락 사태를 막아준 ‘구원 투수’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후 주택 시장 회복과 함께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잦아들 것으로 예상됐던 투자 기관들의 주택 구입 규모는 지난해 오히려 더욱 큰 폭으로 증가했다.

◆ 저가 매물 싹쓸이

투자자에 의한 주택 매입 규모는 2015년과 2016년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 다시 반등, 구입 규모가 가장 컸던 2012년 수준을 훌쩍 넘었다. 투자자들에 의한 주택 구입 수요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주택 임대 수요가 여전히 높고 시중 이자율이 낮아 부동산 외의 다른 투자 수익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집을 사고팔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된 점도 투자자들의 주택 구입 수요에 다시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이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시장은 저가대 매물 시장이다. 투자자들은 저가대 매물 시장에서 거의 대부분은 현금 구입을 통해 저가 매물을 사들이고 있다. 코어로직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가격을 삼등분했을 때) 최하위 가격대 매물 5채 중 1채는 투자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최하위 가격대에서 투자자 구입 비율은 지난 20년 평균 약 15% 미만을 유지했지만 지난해 이보다 약 5% 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랠프 맥래플린 코어로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첫 주택구입자들의 구입 대상 가격대 매물이 투자자들에 의해 대량 매입되고 있다”라며 우려했다.

◆ ‘에스컬레이터’ 조항 첫 주택구입자 울려

디트로이트 도심 지역에 활동하는 부동산 에이전트 셰인 파커에 따르면 이 지역 첫 주택구입자들은 투자자로 볼 수 있는 타주 구입자들에게 번번이 밀려 주택 구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커 에이전트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감정가가 낮게 나올 경우 차액을 보상해주겠다는 ‘에스컬레이터 조항’(Escalation Clause) 등 공격적인 구입 조건을 앞세워 첫 주택 구입자들의 구입 기회를 뺏고 있다고 한다. 파커 에이전트의 고객 중 한 명인 마이클 버넷 부부는 두 딸과 함께 거주할 첫 주택구입을 위해 약 25채의 매물을 둘러봤다.

이중 6채에는 오퍼를 적어 냈지만 모두 현금 구입 바이어에게 뺏기고 말았다. 버넷 부부는 최근 건물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장래 가능성으로 염두에 둔 한 매물에 오퍼를 다시 제출했다. 부부의 오퍼를 포함, 약 12건의 오퍼가 제출됐고 이중 6건은 현금 구입 조건의 오퍼였다. 부부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셀러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별도의 편지까지 써서 보냈지만 결국 현금 구입 바이어 중 한 명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 타주에 투자 주택 구입하는 ‘세입자’ 등장

부동산 투자자 그레고어 왓슨은 주택 시장 침체 직후 투자 파트너들과 함께 전국에 걸쳐 약 6,000채에 달하는 주택을 구입한 뒤 임대용 매물로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왓슨은 최근 부동산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주택 매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루프스탁’(RoofStock)을 발견했다. 루프스탁과 같은 인터넷 주택 매매 서비스 업체는 소규모 투자자 또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직접 매물을 볼 필요 없이 매물을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최근 부동산 시장의 신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인터넷 주택 매매 서비스 등장과 함께 최근 투자자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지역은 주택 가격이 여전히 낮은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 등이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도시에서 주택 구입이 힘든 구입자들 중 인터넷 매매를 통해 주택 가격이 낮은 타주에 투자용 주택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북가주에 거주하는 마이클 픽큰스 부부의 경우 최근 주택 구입을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현금 구입, 노 컨틴전시, 7일 내 구입 완료’처럼 일반 구입자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조건을 앞세운 투자자들에게 번번이 구입 기회를 뺏겼다. 부부는 결국 직장과 멀지 않은 샌타클라라 카운티의 조그만 아파트를 임대하기로 하고 대신 루프스탁을 통해 타주에 투자용 주택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부부는 현재 한 번도 가보지 않는 조지아 주와 테네시 주에 투자용 주택을 구입해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 ‘아이 바이어’, 투자자 매입 부추겨

최근 소위 ‘아이 바이어’(iBuyers)로 불리는 ‘오픈도어’(Opendoor), ‘질로우오퍼스’(Zillow Offers), ‘레드핀나우’(RedfinNow)와 같은 인터넷 주택 매매 서비스 업체들이 주택 시장의 신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들 업체는 집을 내놓고 보여줘야 하는 기존 매매 방식의 번거로움을 없애고 현금 구입 조건을 내세워 셀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코어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자 구입 중 ‘아이 비아이’에 의한 약 2%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투자자 구입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은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멤피스 등이었다. 이들 지역은 주택 가격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임대를 통해 수익을 내기가 비교적 수월한 지역이다. 필라델피아의 경우 지난해 저가대 매물 중 약 절반이 투자자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디트로이트 저가 매물의 약 40%는 투자자들에게 팔렸다고 코어로직 측이 밝혔다.

<준 최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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