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세폭탄’ 일단 연기…통상·안보 고차방정식 어떻게 풀까

2025-07-07 (월) 09: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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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산물·디지털’ 비관세장벽 협상 쟁점화…타협 위해선 정부 ‘내부설득’ 과제

▶ 알래스카 LNG 수입 참여 여부·’조선 핵심’ 제조업 협력 패키지 주목
▶ 전문가 “상호관세·품목관세는 별개…車·철강 관세 인하 어려울 듯”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주요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오는 8월 1일로 일괄 연기하면서 한국도 일단 25%의 '상호관세 폭탄'을 맞지는 않게 됐다.

앞으로 8월 1일까지 20여일간 진행될 한미 간 '끝장 협상'은 팽팽한 긴장 속에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산업·경제 통상 전반의 명운을 걸고 미국과의 합의 도출을 위한 '줄다리기'에 나서게 됐다.

◇ 농산물·디지털 비관세장벽 협상 쟁점…국내 여론 설득 과제


한미 협상에서 우선 이목이 쏠리는 부분은 비관세장벽 분야다.

아시아 국가 중 미국과 가장 먼저 무역 합의를 타결한 베트남과 달리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서 미국과의 관세가 사실상 '0'에 가깝다. 미국을 상대로 '관세 인하'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의식한 듯 미측도 그간 협상에서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지적한 비관세장벽 완화를 지속해서 요구해왔다.

미국 내 정·재계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특히 농산물 개방, 디지털 규제 완화 등을 둘러싼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과 쌀 수입 확대, 미국 기업의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 등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 완화 여부가 주요 관심사다.

특히 한국 정부가 추진을 검토하는 온라인 플랫폼법, 망 사용료 부과에 미국 측이 부정적 견해를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이 희망하는 정밀지도 반출 허용 여부도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슈다.


이 같은 비관세 장벽 이슈는 국내에서도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다.

특히 농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농민들의 반발이 거센 데다 '먹거리 주권'과 직결된 민감하고 휘발성 높은 사안인 만큼, 집권 초반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통상 업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민감성을 의식해 "농업 분야 비관세 장벽만큼은 한국 정부가 설정한 마지막 레드라인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구글 정밀지도 국내 반출 제한 문제 역시 국내 군사·안보 시설이 속속들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국내 반대 여론이 높다.

다만 글로벌 데이터 시장 개방과 주요국의 사례 등을 고려할 때, 이 사안에 대해서는 한미 간 보다 유연한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 같은 주요 쟁점을 놓고 미국과 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대미 관세 협상을 계기로 국내 '규제 합리화'의 관점에서 전향적 검토를 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산업부는 이날 "미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트럼프 관심사' 알래스카 LNG 수입 확대?…'제조업 협력 패키지' 레버리지

대미 무역수지 균형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대미 수입 확대도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가 만만치 않은 과제다.

대표적으로 미측은 한국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한국이 생산·건설에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구체적인 수입계약(오프테이크) 물량을 제시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국으로서, 알래스카산 LNG 도입이 추진되더라도 공급 물량과 시점 등 구체적인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도 적지 않다.

다만 첨단 제조업 분야의 한미 협력 확대 방안은 협상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중 견제 기조를 뚜렷이 한 미국이 제조업 부흥을 위해 협력할 상대국으로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필요로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출신으로 한미 FTA 협상을 이끌었던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이날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한국과 일본은 경제안보 현안에서 긴밀한 파트너였고 조선, 반도체, 핵심광물 에너지 협력 등의 우선 순위 사안에서 미국에 제공할 것이 많다"고 밝혔다.

◇ 통상·안보 결합한 '원스톱 쇼핑 협상' 어떻게

이런 가운데 결국 이번 협상의 '마지막 퍼즐'은 안보 이슈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이 동맹국들의 국방비 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가운데, 한국을 향해서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재조정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통상과 안보를 하나의 테이블에서 동시에 다루려는 이른바 '원스톱 쇼핑식 협상'을 요구하고 있어서 이번 협상은 한층 더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또 미국 측은 협상 과정에서 상호관세율 인하 외 품목별 관세 인하는 기본적으로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미 핵심 수출품인 철강 ·알루미늄(50%), 자동차·자동차 부품(25%)에 이미 부과된 품목별 관세를 철폐 또는 인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로 이어진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232조에 따른 품목별 관세는 '별도 유지'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한국이 목표로 삼아온 자동차·철강 등의 품목별 관세 인하 협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7월 말까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정부는 가시적인 대미 무역흑자 축소 방안을 제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 홍보에 필요한 한국 내 비관세 장벽 개선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원장은 또한 "첨단산업 분야의 한미간 공동 투자 및 기술 협력을 부각해서 단순한 관세 협상을 넘어 경제안보 연대 강화로 협상 방안을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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