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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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요”

2019-07-1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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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초복에 이어 오는 22일은 중복, 한창 폭염 속에 살고 있다. 이 무더운 날 더욱 덥게 만들어주는 복잡하고 짜증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최근 한줄기 청량제 같은 미담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바로 지난 4일 맨하탄 14가 유니온 스퀘어 거리에 있는 홀푸드 매장에서 생긴 일이다. '
브로드웨이와 4번가가 교차하는 지점인 맨하탄 14가 유니온 스퀘어는 늘 사람들로 붐비고 다양한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있어 언제나 젊음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곳이다. 월·수·금·토요일은 뉴욕 근교 농장에서 재배생산 된 농산물과 식품을 파는 그린 마켓도 열린다.

이곳의 홀푸드 매장은 온갖 종류의 식품들이 눈과 혀를 현혹시킨다. 2층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어 사람들은 커다란 유리창 가에서 유니온 스퀘어를 내려다보며 커피나 샌드위치를 먹는다. 온갖 먹음직스럽고 진귀한 식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보니 세상은 부유하고 풍족한 것만 같다.

그런데 뉴욕에는 아직도 끼니를 다 못 챙기는 홈레스와 극빈자가 많다. 이곳에서 한 여성이 배고픔을 못이겨 음식을 훔쳤다가 잡혔다. 음식을 가방에 담아 계산을 하지 않고 홀푸드 매장을 빠져나오다가 경비원에게 적발됐다. 경비원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마침 이곳에 점심을 사러 나온 3명의 경관은 이 여성에게 수갑을 채우는 대신 음식값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들의 선행은 이 광경을 지켜 본 한 남성이 트위트에 올리면서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었다. 트위터의 사진에 의하면 이 여성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고 그녀 둘레에 선 3명의 NYPD들은 그녀에 대해 무심한 표정으로 계산을 하고 있다. 왜 이런 뉴스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지. 체포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여성은 경관들이 도와주자 눈물을 흘린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파리의 장 발장은 빵 하나를 훔쳤다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배고파 울고 있을 조카들을 위해 수없이 탈옥 시도를 했다가 19년의 징역생활을 해야 했다. 출소후 미리엘 주교에게 감화 받아 새사람이 되지만 전과 기록으로 평생을 경찰 자베르의 추격을 받게 된다.

누군가가 장 발장에게 밥 한 끼, 빵 하나를 주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그리 고달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가하면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를 사러갔다가 손님들이 불편해 한다면서 가게에서 쫒겨난 경찰들이 있었다. 지난 6일 애리조나주 템피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 교대 근무를 앞둔 이들 6명의 경찰이 커피를 주문하고 서있는데 이 매장 바리스타가 다가와 ‘고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거나 매장을 떠나달라’고 한 것이다. 이에 기분이 상한 경찰들은 결국 매장을 나갔다고 한다.

위험한 일에 앞장서는 경찰이 진정한 공복이라고,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울 때는 언제고 직업 갖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인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논란이 확산되자 회사측은 사과를 했다지만 있는 일이 없었던 일은 되지 않는다. 이 뉴스는 안그래도 더운 날씨를 더욱 덥게 만들었다.

살기가 힘들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사는 것이 더욱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한줄기 생명수 같은 미담은 가진 것 없고 희망 없는 자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한인사회에도 은퇴하고 병에 걸린 원로 목사를 돕는 목회자들, 한국음식을 만들어 소외된 이웃과 탈북자를 돕는 이들, 독거노인을 위해 차량운전을 하고 음식 배달을 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이들은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착한 사람, 순한 사람, 욕심 없는 사람이 사는 세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앞으로 홀푸드 매장 미담 같은 일들이 한인사회에도 종종 일어나기 기대한다. 미담 기사 하나가 하루종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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