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선변호사와 검사

2019-07-11 (목)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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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9만표 중 16표. 뉴욕시 퀸즈 검사장 선거의 민주당 후보를 뽑는 예비경선 투표결과가 단지 16표 차이로 결정이 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개표결과 티파니 카반(Tiffany Caban) 후보와 멜린다 캣츠(Melinda Katz) 후보의 득표수가 단지 16표 차이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오랜 기간 퀸즈의 검사장이었던 리차드 브라운(Richard Brown)이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해 11월에 있을 퀸즈 검사장 본선거의 민주당 후보명단에 전직 판·검사를 비롯한 다양한 출신의 지원자가 7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그 중 31살의 국선변호사 출신 여성 카반 후보는 처음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민주당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 상원의원 등의 거물 정치인들과 뉴욕 타임스와 같은 유력 언론매체의 지지를 받으며 돌풍의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그녀는 퀸즈 민주당의 공식 지지를 등에 업은 현 퀸즈보로장 캣츠 후보와 자웅을 겨루고 있는데 누가 이기든 민주당 강세 지역인 퀸즈 특성상 예비경선의 승리자는 본선거의 당선이 거의 확실시된다.


카반 후보의 약진은 여러가지 점에서 흥미로운데 그 중 하나는 바로 국선변호인 출신이란 점이다. 경찰이 사람을 체포하게 되면 검사들이 이를 넘겨받아 기소를 담당하면서 형사사건의 법정공방이 시작되는데 이때 검사에 맞서 피고인들의 권리를 대변해 주는 역할이 변호사의 몫이다. 헌법에 의해 형사피고인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변호사 선임 비용이 없을 경우 나라에서 대신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준다. 그러므로 국선변호인 출신인 카반 후보의 검사장 출마는 아군과 적군이 완전히 뒤바뀌는 파격적인 변신인 셈이다.

최근까지 국선변호사가 검사장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동안 터프한 이미지의 검사들이 주로 검사장으로 선출돼 왔기도 하지만 국선변호인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주적인 검사로 돌변한다는 것은 한솥밥을 먹던 동료 변호사들과 의뢰인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되어 터부시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반 후보는 의뢰인의 사정을 속속 꿰뚫고 있는 국선변호인 출신이야말로 최적격 검사장감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소량의 마약 소지죄나 지하철 무임승차 등 경미한 수준의 범죄나 성매매업 종사자들에 대한 기소 중지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저인망식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국선변호인의 검사장 출마는 비단 뉴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17년 필라델피아시의 검사장으로 선출된 래리 크래스너(Larry Krasner) 역시 25년 이상을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로 일을 해오다 형사 사법 제도의 개혁을 외치며 검사장으로 선출된 전례가 있다. 또 비록 검사 출신이긴 하지만 보스턴의 레이첼 롤린스(Rachel Rollins)도 형사법 시스템의 개혁을 외치며 작년에 검사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미국 형사법제도의 곪은 문제는 오래된 범죄와의 전쟁으로 늘어만 가는 수감자,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투입되는 재정, 흑인과 히스패닉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박해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출소자들의 재범률 등으로 요약되는데 이들의 검사장 선출은 오래된 패러다임의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의 열망이 담겨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형사법제도 개혁문제는 검사장 선거와는 별개로 또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디 블라지오(De Blasio)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뉴욕시 감옥인 라이커스 아일랜드(Rikers Island)의 폐쇄와 얼마전 개정된 뉴욕주의 경범죄 및 비폭력 중범죄 혐의자를 위한 보석금 제도 폐지, 증거물 공개 확대 조항, 기소 절차에서 불필요한 연기 단축 등이 그것들이다.

이렇듯 이번 민주당의 예비선거가 미국과 뉴욕 형사법제도 개혁의 티핑포인트가 될 공산이 높다. 우리가 16표의 행방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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