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맨스의 라벨과 품질

2019-07-09 (화)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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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수많은 가공 식료품 라벨이 있듯이 남녀 간 관계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라벨이 붙는 것 같다. 그냥 지인, 막연히 호감을 느끼는 ‘썸’한 사이, 사귀는 사이, 고정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 약혼자, 동거하는 남녀의 내연 관계,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 혼외정부 (情夫/情婦) 또는 사모하기만 하는 연인이나 진정으로 사귀는 사람 정인(情人) 등등 말이다.

1957년 개봉한 영화 ‘처와 애인’이 있다. 김성민 감독에 주증녀, 이택균, 강숙희와 김승호가 출연한 그 당시 ‘신파조(新派調)’로 분류됐던 멜로드라마이다.

택균과 증녀 부부는 북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6.25 사변으로 택균이 먼저 남하하고 증녀가 뒤늦게 남하한다. 먼저 남하한 택균은 음악가 숙희와 더불어 열렬한 사랑을 하고, 뒤늦게 남하하여 그 사실을 안 증녀는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고민하던 택균은 마침내 아내인 증녀에게 돌아간다.


60년이란 세월이 지난 오늘날 세태가 많이 바뀌었을 한국 사정은 해외에 사는 입장이라 잘 모르겠지만, 미국의 풍속도만 보더라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온 것 같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후킹 업(hooking up)’이라는 아무런 부담 없이 하는 성관계가 유행이고, ‘학기말을 위한 편리한 친구들(Finals Friends With Benefits)’라고 학기말 시험으로 생기는 스트레스 긴장감을 풀어 해소시키기 위한 성관계 파트너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더 이상 옛날처럼 독신 ‘싱글’이냐 아니면 ‘누구와 사귀는 중(in a relationship)’이냐, ‘모든 사람에게 맞는 두 사이즈(two-sizes-fit-all)’만 있는 게 아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어느 누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하면 쿨 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진 구식(舊式)쟁이 취급 받는단다.

다시 말해 ‘싱글’로부터 시작해 아무런 감정 없이 순전히 육체적인 ‘후 컵’, 겨울에 외출해 사람들 만나기엔 너무 추운 날씨라 집안에서 따뜻하고 아늑하게 순전히 육체적인 성관계 스킨십(skinship)만 하는 소맷부리 ‘커프스(cuff)’로 부르는 관계, 같은 사람하고 반복적으로 섹스만 하는 사이, 정식으로 데이트하는 관계, 그리고 최종 결승선 테이프를 끊고 맺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in a relationship)’까지 그 스펙트럼(spectrum)은 아주 광범위하단다.

이런 현상이 뭘 말하는 것일까?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이해타산 때문일까 아니면 감성적이든 물질적이든 어떤 부담이나 책임도 지지 않고 회피하려는 우유부단함일까. 그도 아니라면 신념도 용기도 열정도 없이 허수아비 같은 인형들로 전락한 것일까, 심히 한심스러울 뿐이다.

진주를 캐려면 목숨 걸고 깊은 바닷물에 뛰어들어야 하듯 영어로 ‘ All or Nothing ’이라고, 또 ‘ Now or Never ’ 라고, 진정한 삶’이란 정호승 시집 제목처럼 ‘사랑하다 죽어버려라’고 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삶을 살아버려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사랑으로 숨 쉬는 순간순간이 바로 극락생(極樂生)이요, 사랑의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이 극락길로 가는 극락사(極樂死)가 되어 극락왕생(極樂往生) 할 테니까. 설혹 그런 일이 없더라도 이승이든 저승이든 사랑하면 언제나 극락계(極樂界)가 되리. 그 이상의 행복이 어디 있으랴.

<이태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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