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5세의 인생 회고

2019-07-08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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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학자인 캠폴로(Anthony Campolo)박사는 95세 이상이 된 고령자 50명을 상대로 연구한 사람인데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만일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면담자의 고백 중 가장 많았던 세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흔히 이것을 ‘더 하고 싶은 세 가지’(Three-more in my life)라고 부른다.

첫째, “좀 더 반성하며 사는 삶을 살겠다.”(Reflect More) 너무 빨리 달려가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정말 귀중하고 보람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고령자들의 아쉬움에 찬 고백이다. 가끔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였다는 고백인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기도’, 불교에서는 ‘명상’이라고 부르고 다른 종교나 수양 과정에서도 말하는 ‘자기 성찰(省察)’이다.

둘째, “좀 더 모험을 하겠다.”(Risk More) 조마조마하게 목구멍 채우기에 매달려 살 것이 아니라 더 담대하게, 더 굵게 살겠다는 고백이다. 손해를 걱정하고 이익에만 매달리던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헌신도 하고, 정의롭고 바른 일에 투자도 하며, 많은 불행한 사람들도 볼줄 아는 넓은 시야로 살고 싶다는 고백이다.


셋째, “죽은 뒤에도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싶다.”(Value More) 물질적인 유산이든 정신적인 유산이든, 후손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유산을 말한다.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가슴에 감사와 감동을 남겨 놓을 수 있는 유산이라면 가치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깨달음이 생겼다면 너무 늦었다는 나이는 없다. 95세라도 좋다. 즉시 ‘진정한 가치’를 향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 된다. 우리 앞에는 곧 ‘그 날’이 온다. 나 개인이 평가되는 그 날, 내가 심판되는 그 날, 이제는 반성해도 돌이킬 수 없는 그 날, 생명의 빛이 희미해지는 그 날이 온다. 고령자 인생의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한 위와 같은 세 가지 후회를 그 날에 가서야 하지 말고 오늘 당장 해야 한다. 이것이 소위 “바른 인생관을 가지라”는 성현(聖賢)들의 충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최고다”고 하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곧 정말 가치있는 것들이 많다. ‘사랑의 눈동자’는 돈을 아무리 쌓아도 살 수 없다. 아들 딸 생각하며 돌아앉아 눈물 적시는 어머니의 눈동자는 돈으로는 살 수 없다. 썩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던 나를 오랫동안 기억해 준 옛 친구의 마음, 그토록 귀한 것도 돈으로는 절대 환산이 안 된다.
Companionship(동반)이라는 좋은 말이 있다. 육체의 동반이 아닐지라고 마음의 동반이면 족하다. 동반은 나와 함께 해주는 우정이다. 이런 것도 돈 주고는 살 수 없다. 미국 노인문제 협의회의 의장인 다니엘 절즈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현대 노인의 문제는 돈 문제도 건강 문제도 아니다. 결국 좋은 동반자가 없다는 것이다.” 슬픔과 근심, 고독과 불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우정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우정어린 동반’은 돈으로는 살 수 없다.

가장 비참한 인간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힐 것이다. “이 사람은 잘 막고 잘 마셨다. 일터와 침대 사이를 부지런히 왕복했다. 이 사람이 남긴 것은 질투의 상처와 욕심의 통장과 경쟁의 신발 한 켜레 뿐이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가치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피하거나 소원했던 옛친구를 찾으라.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신뢰하는 법을 배우라. 사랑의 편지를 쓰라.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어주라. 대답을 부드럽게 하고 젊은이를 격려하라. 약속을 지키고 원수를 용서하라. 너무 부러워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라. 그럼 당신도 가치있는 인간이 된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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