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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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한다

2019-06-21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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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 것은 우리 주변의 자연이나 환경은 물론이요 나 자신의 모습과 내면의 의식을 포함하여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직접 간접으로 이어진 모든 관계의 끈들 조차 변하는 어길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 것 같다. 비 내리는 창밖의 우울함도 이제 곳 지나가리라. 다시 해가 나와서 초여름의 푸르름을 더욱 진한 초록으로 바꾸겠지.

여름이 되면 휴가를 생각하게 되고, 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이제는 우리의 습관이 된 것 같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철마다 여행을 계속한지가 벌써 30여년이다. 여행의 발길이 여러 대륙과 나라들을 거치면서, 다르고 생소한 사람들과 문물을 접하고 경험하는 즐거움이 이제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친구와 친지들로부터 여행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제한된 나의 경험으로 이런 질문에 물론 다 대답할 수는 없다. 시간, 형편, 관심과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렇게 하라고 말 할 수는 더욱 없다. 누구나 다 아는 몇 가지 일반적인 조언과 여행 가이드북을 사서 읽으라는 정도로 하나마나 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여행을 하려면 가는 곳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라는 것과 같은 말 이다. 원래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아는 만큼 그 만큼 본다). 지난 30여년 여행을 하면서 나는 지켜온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당연히 나의 원칙은 나의 것 일뿐, 다른 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우선 여행사를 통한 단체 여행은 피한다. 여행 목적지를 정하면 그 곳에 가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적어도 6개월 이상 구체적인 계획, 준비, 공부를 한다.

여행비용은 항상 따로 저축하며 여행예산을 좀 넉넉하게 잡고 그 예산은 100% 집행한다(잔 돈 아낄 생각 하지 말고 예산 안의 돈은 다 쓰고 온다. 돈 아끼려면 집에 앉아있는 게 최선이다). 선물은 사지 않는다.

철학교수라는 독특한 직업을 30여년 지내면서 연구와 삶의 여정에서 얻은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는 재미는 내 삶의 큰 보람이었다. 넓은 안목으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고 권고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일, 요즘 말로 “찬찬찬(희망찬, 활기찬, 가득찬)”을 가르치는 것 보다 더 좋은 직업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한다. 지난 30여년 지켜오던 여행의 원칙도 이제는 변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되었다. 친한 지인이 내일 여행을 간다고 한다. “런던에 가면 이런 저런 것들을 보고….” 말을 하다가 쓸데없는 조언이라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박목월 시인인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목적 없이, 계획도 준비도 갈 곳도 없이 발 닿는 대로 구름에 떠가는 달처럼 여행을 할 수는 없을까?

올여름 계획한 여행을 끝내면, 내년부터는 “구름에 달 가듯이 산유만보(散遊慢步) 하려한다. 죽는 날까지 여행을 계속 하련다.

어디서 죽든 무슨 상관인가? 집에 앉아서 죽으면 더 좋을 것이 무엇인가? 소노 아야코(曾野綾子) 여사의 말처럼 연락처와 자필의 화장 승락서 하나 휴대하고 다니면 그만 아닌가? 朴木月, 나무와 달 그 이름이 좋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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