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머리카락 구하기 힘들고, 관리하기도 힘든 인모 가발 대신, 합성섬유 인조모 혼용이 대세
▶ 3D스캐너로 정확한 두상 측정도, 고객들 원하는 파마·염색 위해, 화학결합 강한 ‘고열사’가 쓰여
(위)사람 머리카락을 현미경으로 본 모습. 표면이 물고기 비늘처럼 생겼다. (아래) 사람 머리카락 표면에서 비늘처럼 생긴 구조 일부를 깎아낸 뒤 현미경으로 본 모습. 원래 머리카락보다 덜 울퉁불퉁하다. <하이모 제공>
헤어스타일,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앞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머리카락이 적은지 많은지, 색깔이 검은지 흰지에 따라 인상이 좌우되고, 인생이 달라진다. 꼭 탈모 때문이 아니어도 가발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가발은 감쪽같아야 한다. 실제 내 머리카락이 아니지만 남들은 내 머리인 줄 알아야 좋은 제품이다. 이런 착각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진짜 내 머리처럼 자연스러운 가발의 필수 조건은 바로 촉감과 밀착력. 이를 결정하는 핵심은 인조 머리카락과 작업자의 손기술이다.
진짜보다 진짜 같은 인공 머리카락
예전엔 자연스러운 가발을 만들기 위해 사람 머리카락(인모)을 썼다. 하지만 파마와 염색이 보편화하면서 건강한 인모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가격도 점점 올라갔다. 인모로 가발을 만들 때는 대개 머리카락의 가장 바깥 표면인 모표피(큐티클)를 어느 정도 깎아낸다. 모표피에는 물고기 비늘처럼 생긴 투명하고 얇은 조직이 여러 층 겹쳐 있다. 이를 그대로 두면 인모를 가발에 심기 위해 매듭을 만들 때 쉽게 엉킨다. 그렇다고 모표피를 몽땅 없애버리면 모발이 금방 손상돼 최소량은 남겨둔다. 모표피를 깎아낼 때 화학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모 자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좋은 가발을 만들지 못한다.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잘 변색되고, 수분이 많아(전체 구성 성분의 10~20%) 관리가 까다로운 것도 인모의 단점이다. 그래서 요즘엔 합성섬유로 만든 인조 머리카락(인조모)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발업계에 따르면 인모와 인조모를 6대 4 또는 7대 3 비율로 섞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 인조모의 품질은 인모와 얼마나 비슷한 지로 결정된다. 장난감 바비 인형의 머리도 인조모의 일종인데, 만져보면 대부분 푸석푸석하고 정전기도 심하다. 이런 인조모는 고온에 약해 쉽게 손상되는 섬유(저열사)로 만든다.
좋은 가발에 들어가는 인조모의 소재는 대부분 ‘고열사’다. 저열사와 고열사를 가르는 기준은 섬유가 견디는 온도다. 보통 140~180도의 고온에도 형태를 보존할 수 있는 합성섬유를 고열사로 분류한다. 고열사는 내부 화학결합이 저열사보다 상대적으로 강하다. 고열사는 파마나 염색을 한 머리카락처럼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모양이나 색깔로도 만들 수 있다. 사람의 머리카락 색깔은 40~50가지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가발전문업체 하이모는 고열사를 이용해 내부 구조까지 인모를 모방한 자체 인조모(넥사트모)를 개발했다. 인모는 가장 바깥 표면인 모표피 안쪽에 차례로 모피질, 모수질이 존재한다. 인모 전체 부피의 85~90%를 차지하는 모피질은 강도와 탄력, 질감, 색상 등을 결정하는 모발의 ‘몸통’이다. 한가운데 자리한 모수질은 빈 빨대처럼 생겨 안에 공기가 들어 있다. 이춘우 하이모 과장은 “넥사트모는 이 같은 구조를 본떠 합성섬유를 2중으로 구성했다”며 “덕분에 대개 한 가닥의 섬유로 이뤄진 보통 인조모보다 촉감이 인모와 더 비슷하고 열에도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어떤 가발은 사람 머리와 비슷한 데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빛이 반사되는 양상이 인모와 인조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모는 모표피의 비늘 모양 구조 때문에 현미경으로 보면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손으로 만졌을 때 촉감은 표면이 원래 매끈한 인조모와 별로 다르지 않지만, 햇빛이나 밝은 조명을 받으면 차이가 확연해진다. 인모에선 빛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데, 인조모는 강하게 반사되며 부자연스러운 광택을 낸다.
넥사트모를 비롯한 일부 인조모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표면까지 인모를 모방해 만든다. 인위적으로 합성섬유 표면을 군데군데 깎아내 흠집을 내는 것이다. 이런 요철 구조가 생긴 인조모는 표면이 온전히 매끈한 인조모보다 밝은 곳에서 더 자연스러운 윤기가 난다.
두상 측정 정확도도 관건
자연스러운 가발을 만들기 위해 머리카락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두상 측정이다. 인조모가 아무리 감쪽같아도 가발이 머리 모양에 딱 들어맞지 않으면 내 머리가 아닌 티가 난다. 가발 쓸 사람의 두상을 오차 없이 본떠 그 형태대로 인조 두피(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두상을 본뜨는 가장 흔한 방법은 랩이나 비닐을 머리에 두르고 겉면을 테이프로 촘촘하게 감아 그대로 벗겨내는 것이다. 특수소재 판넬을 머리 위에 대고 눌러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떼어내는 방법도 있다. 치과에서 특수물질을 치아 위에 덧입혔다 굳은 뒤 떼어내면 굳은 물질 안쪽에 치아의 모양과 굴곡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이들 방법은 모두 사람 손을 거치기 때문에 오차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엔 가발 제작에 3차원(3D) 두상 스캐너가 동원된다.
가발을 착용하려는 고객이 머리에 흰 천을 쓰고 기계에 턱을 고정시키면 3D 스캐너가 360도로 회전하며 빛을 방출한다. 광원에서 나온 빛이 머리의 흰 천에서 반사돼 다시 스캐너의 광수신부에 돌아오면 도달 시간과 거리, 세기 등의 차이에 따라 방대한 데이터가 생성된다. 이를 모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면 고객의 두상과 동일한 형태를 컴퓨터에서 구현할 수 있다. 완성된 두상 형태를 몰딩 기계로 전송해 두상을 본뜬 모양의 몰드(석고상처럼 생긴 틀)를 만든다.
다음은 몰드 모양에 맞춰 베이스를 제작한다. 대개 폴리에스테르나 폴리우레탄 소재로 만드는 베이스는 인모와 인조모를 엮어 넣는 촘촘한 그물망과, 이마로 살짝 내려오는 미끈한 스킨 부분으로 구성된다. 스킨과 그물망 모두 두꺼울수록 내구성이 강해 머리를 감거나 부딪히는 등의 화학적, 물리적 자극에 잘 견딘다. 하지만 스킨이 얇을수록 가발과 이마의 경계가 두드러지지 않고, 그물망 역시 얇아야 자연스럽고 착용감이 편안하다. 베이스는 두피에 직접 닿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기능성 소재가 쓰이기도 한다. 최근엔 구리를 입혀 정전기를 줄인 동도전사, 실크보다 부드러운 연사(연꽃에서 추출한 실)직물, 통풍이 잘 되는 한산모시 베이스도 등장했다.
기계보다 정교하게 한 땀 한 땀
고객의 두상을 적용한 베이스가 완성되고,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연출할 인모와 인조모를 선별하고 나면 가발 제작의 마지막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부터는 모두 수작업이다. 선별된 모발을 작업자가 그물망에 손으로 한 올 한 올 일일이 매듭을 지으며 촘촘히 엮어 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 중 가발의 자연스러움을 결정짓는 최종 요소가 바로 매듭이다.
사람 머리카락은 두상 부위에 따라 두피에 연결된 형태가 다르다. 이를테면 귀 위나 옆에 난 모발은 두피에 가깝게 누워 있다. 가발의 이 부위에는 매듭을 한번만 지어 모발을 심는다. 반면 목덜미 쪽에 심을 때는 매듭을 두 번 감는다. 모발이 옷에 계속해서 쓸리는 부위라 쉽게 풀리지 않고 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발에 심는 모발은 이처럼 매듭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보다 약 20㎝ 긴 걸 사용한다.
인조모를 섞은 가발은 머리카락만 놓고 보면 사람 머리보다 관리가 수월하다. 인조모의 수분 함유율은 0.4%로 인모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빨리 마르고, 색깔도 덜 변한다. 인모를 파마하면 모피질 속 단백질들 사이의 결합이 화학반응으로 끊어졌다 새로운 형태로 다시 연결되는데, 이 재결합의 강도는 원래 결합보다 약하다. 그만큼 머리 모양이 오래 가지 못하고 모발 자체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조모는 섬유가 견딜 수 있는 온도를 넘는 자극이 없다면 섬유 속 화학결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머리 모양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다만 한번 제작된 가발은 사용 도중엔 파마나 염색이 어렵다.
모발을 다 심은 가발은 열처리로 최종 형태를 잡아준 다음 깨끗하게 씻어 고객이 주문한 스타일을 내면 완성이다. 주문 이후 완성된 제품이 판매처로 전달되기까지 보통 4, 5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착용하면서 인류 역사에 등장했다고 전해지는 가발은 과거엔 주로 종교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됐다. 현대의 가발은 탈모를 가리거나 외모를 단장하기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 탈바꿈하며 자신감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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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