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객 없는 수산시장’… 제철 맞은 방어, 새우 먹으러 울진 간다

2025-11-19 (수) 12:00:00 울진=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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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울진군 죽변항

쫄깃하고 탱글한 식감을 자랑하는 방어는 늦가을부터 제철이다. 방어뿐 아니라 가자미, 새우, 곰치, 굴 등 다양한 해산물이 미식 여행객을 유혹하는 요즘, '호객 없는 수산시장'으로 입소문을 탄 곳이 있다. 경북 울진군 죽변항이다. 경북 최북단의 항구인 죽변항은 최근 신선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동해안 일대에서 마음 편히 찾기 좋은 숨겨진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방어 등 제철 생선을 맛보고 한국 유일의 자연 온천수가 나오는 덕구온천까지 즐길 수 있는 경북 울진군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 가자미, 새우, 곰치, 장치...풍부한 어자원 모이는 죽변항

울진 죽변항은 풍부한 수산자원 덕에 같은 관내 후포항, 포항 구룡포와 함께 경북의 주요 어업기지로 꼽혔다. 1923년 근대적 항만의 모습을 갖춘 이래 10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조선시대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울진의 토산물로 연어, 자해(대게), 문어, 대구, 방어 등이 기록되어 있다. 죽변항은 1930년대는 정어리잡이로, 1950년대에는 명태잡이로, 1970년대에는 오징어잡이로 호황을 누렸다.


현재도 죽변항 인근에는 다양한 어종이 있다.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친숙한 생선 가자미도 죽변항 명물이다. kg당 몇 천 원에 불과해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서민 가자미'부터 kg당 십수만 원을 호가하는 '황제 가자미'까지 다양하다.

연중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자미는 기름가자미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가자미의 절반이 기름가자미라고 할 정도다. 깊은 바닷속에 서식하며 기름이 풍부하고 식감이 부드럽다. 미끈한 점액을 분비해 현지에서는 물가자미(미주구리)로 부르기도 하지만 표준명 물가자미는 전혀 다른 종이다. 뼈와 살이 물러서 물가자미로 잘못 불린다는 설도 있다. 검은 지느러미 탓에 일본에서는 히레구로(검은 지느러미)라 불린다.

기름가자미는 흔한 만큼 가장 저렴하다. 이름처럼 기름기가 많아 생물로 먹으면 살이 쉽게 부스러져 보통 반건조해 구워 먹는다. 이맘때 동해안 어촌에서 기름가자미 수십 마리를 해풍에 말리는 정겨운 풍경도 자주 볼 수 있다. 무른 육질 탓에 발효시키면 금세 삭는다. 구하기 쉽고 발효도 빠르니 향토 음식인 식해의 재료로도 널리 애용된다. 회로 자주 먹는 어종은 아니지만 ‘잡어회’에 한 두 마리 섞어주거나 물회로 먹기도 한다.

기름가자미 못지않게 친숙한 가자미는 참가자미다. 흰 무안부(배쪽)에 노랑 ‘Y’자 무늬로 구분할 수 있다. 기름가자미보다는 가격이 비싸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역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생선이다. 식해, 찌개, 회, 물회, 구이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즐길 수 있다. 살이 푸석한 기름가자미와 달리 제철(봄)에는 육질이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 서민 횟감으로 인기가 많다.

같은 가자미지만 이 기름가자미, 참가자미와 다르게 ‘귀한 몸’인 줄가자미(이시가리) 역시 지역의 별미다. 수산시장에서 kg당 10만 원 내외를 오가는 가격을 자랑한다. 온 몸에 오돌토돌한 흰 점무늬가 있어 여느 가자미와 확연히 구분된다. 선홍빛을 띠는 살이 탄탄하고 고소한 맛이 돌아 횟감으로 최고 대접을 받는다. 뼈째 썬 ‘세꼬시’로 주로 먹는데, 뼈도 살 못지않게 고소한 맛이 뛰어나 그렇다. 뼈가 연해지는 이달부터 겨울이 가장 맛있는 시기다.

죽변항은 새우도 유명하다. 회와 초밥으로 널리 애용되는 단새우는 죽변항 위판장의 단골이다. 표준명은 ‘북쪽분홍새우’지만 통상 ‘단새우’로 불리고, 울진 일대에서는 ‘홍새우’로 통한다. 익히지 않아도 껍질이 붉고 얇다. 입에 넣으면 녹을 듯 부드러운 식감과 은은한 단맛으로 내륙 음식점에서 비싸게 팔리지만, 현지 가격은 바구니당 2만 원 내외다.

동해안 지역에서만 유통되는 ‘가시진흙새우’도 죽변항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현지 수산시장에서 ‘보리새우’라 하면 이 새우를 말한다. 고급 일식집에서 사용하는 보리새우(오도리·구루마에비)와 다른 종이다. 적갈색 몸통에 마디마다 흰 테두리가 있어 확연히 구분되는 외형을 지녔다. 인지도는 단새우에 비해 낮지만, 단새우를 뛰어넘는 녹진한 감칠맛에 한번 맛본 이는 계속 찾는다. 당일 조업한 가시진흙새우는 회로 맛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선도가 조금 떨어진다면 양념게장처럼 붉은 양념에 무쳐 먹는다.


일명 ‘독도새우’ 삼총사도 죽변항의 특산물이다. 울릉도·독도 부근 심해에서 조업한 물렁가시붉은새우(꽃새우), 가시배새우(닭새우), 도화새우가 입하된다. 무게나 바구니 단위로 판매하는 단새우나 가시진흙새우와 달리 마리 단위로도 판매할 정도로 몸값이 높다. 통상 꽃새우가 가장 저렴하고, 도화새우가 가장 비싸다.

울진은 ‘못생긴’ 생선들이 활약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장치로 불리는 벌레문치는 긴 몸을 지녀 뚱뚱한 뱀장어를 보는 듯하다. 예전엔 잡히면 발로 차 버릴 정도로 천대받았지만, 지금은 살이 통통하고 쫄깃한 별미 생선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무와 함께 칼칼하게 조린 장치찜은 쌀쌀한 날씨에 속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별미다. 강원 지역 향토 음식으로 본래 강원 지역이었던 울진에서도 즐겨 먹는다.

곰치 역시 못나지만 맛 좋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물컹한 몸 때문에 ‘물곰’이나 ‘미거지’라 불리기도 한다. 해장국으로 인기 만점인 ‘곰치국’의 재료로 유명하다. 잡은 생선을 육지까지 살아 있는 상태로 유통하기 어려웠던 시절 선상에서 갓 잡은 곰치와 김치를 함께 끓여 먹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조선 후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집필한 ‘자산어보’에 곰치에 대해 "살점이 매우 연하고 뼈도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는 기록에 비추어 예부터 해장국으로 즐겨 먹었던 듯하다.

■ 한국 최고 금강소나무와 한국 유일 자연 온천수

연중 내내 바다에서 건져올린 풍요로운 수산물 덕에 죽변항은 인근 장터에 이를 내다팔기 위해 모인 보부상으로 붐볐다. 보부상들은 건어물, 소금, 생선, 젓갈 등을 사들여 경북 봉화, 영주, 안동 등 내륙으로 행상을 떠났다. 이들이 넘던 열두 고개의 길을 ‘십이령길’이라 부른다. 울진 흥부장~쇠치재(쇠고개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처진터제~한나무재(적은넓재)~넓재(큰넓재)~꼬치비재~곧은재~막고개재~살피재~모래재~춘양장으로 이어진다.

십이령길은 현재는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에 속해 있다. 이 길이 지나는 산림 일대는 한국 최고의 금강소나무 자생지로 꼽힌다.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예약하고 탐방해야 한다. 자연 보호를 위해 탐방 인원은 하루 80명으로 제한된다. 탐방로는 편도 13.5km 코스다. 탐방로 입구부터 시야를 가득 채우는 협곡과 돌계를 시작으로 정취가 빼어나다.

탐방로 입구 근처에는 마을(두천리) 주민들이 합심해 세운 ‘십이령옛길 보부상 주막촌’이 있다. 조선시대 보부상에 빙의해 행상길을 떠나기 전에 하룻밤 묵을 수 있고, 한 끼 식사만 하고 떠나도 좋다. 가자미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칼칼하게 끓인 가자미찌개, 직접 쑨 도토리묵과 각종 산나물, 쫄깃한 메밀전이 푸짐하게 나온다. 바닷가와 산마을 음식을 한상에 받아볼 수 있다. 달지 않게 빚은 수제 막걸리도 지나칠 수 없다. 삼삼하고 담백한 맛이다.

십이령길 외에 응봉산 덕구계곡도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온천수가 솟아나는 '진짜 온천'으로 명성이 자자한 덕구온천이 있다. 덕구온천에서 출발해 오솔길 4km를 걸으면 원탕에 도달할 수 있다. 계곡 중반 힘차게 흐르는 용소폭포가 절경이다.

<울진=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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