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펭귄밀크와 허들링

2019-03-05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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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인이 동영상을 보내왔다. 황제펭귄의 일생을 담은 영상이었다. 제목은 ‘허들링, 아버지의 눈물’ 주요내용을 정리하면 이랬다.

‘남극의 10월이 오면 모든 생물들이 떠난다. 섭씨 영하 50도 극한의 추위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추위를 찾아 이동하는 이상한 동물이 있다. 펭귄. 해안에서 100Km나 떨어진 서식지. 콜로니로 향하는 황제펭귄이다. 시속 0.5Km의 기우뚱 거리는 걸음으로 때로는 배를 깔고 코보강을 미끄러져 가며 20일 동안의 강행군이 계속된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은 오아모크 빙산. 오로지 추위와 얼음. 차가운 극지방의 바람만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여기를 빙원의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곳은 어떤 천적도 살 수 없기에 그들만이 마음 놓고 사랑의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 기를 수 있는 생명의 수호지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그 추위가 펭귄들에게는 생명을 번식하는 가장 안전한 축복의 땅이 되는 셈이다.

황제펭귄은 얼음절벽으로 오른다. 서식지에 도착하자마자 몰아치는 한파 속에서 짝짓기를 한다. 무리 속에서 러브콜에 성공한 펭귄들의 영하 50도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암컷은 알을 낳아 수컷의 발 위에 올려준다. 추위가 만들어낸 사랑의 협동이다. 발등의 털로 알을 품은 수컷들은 몇 초만 드러나도 얼음이 되어 버릴 알을 지키기 위해서 부동자세를 취한다. 알이 부화하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암컷들이 먼 바다로 떠난다. 수컷은 암컷이 돌아올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굶주림과 긴 기다림의 부성애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새끼가 부화를 해도 먹이를 구하러간 어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펭귄 아버지는 가뜩이나 굶주린 자신의 위벽이나 식도의 점막을 녹여 토해낸다. 이것이 바로 ‘펭귄밀크’라 부르는 아버지의 젖이다.


대개 동물세계에서는 짝짓기를 하고 나면 수컷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암컷 혼자서 새끼를 낳아 기른다. 부성애는 인간 특유의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그러나 착각일 것이다. 대체 어떤 아버지가 펭귄처럼 자신의 살점을 저미는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는가. 그것은 오직 섭씨 영하 50도의 추위가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랑의 기적이다. 자식이 뭐길래, 생명이 뭐길래. 저것들이 저리도 추운 얼음 위에서 부부의 사랑을 끊지 못하고 애태우는가. 개중에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짝을 찾다가 망부석처럼 얼음 언덕에 붙박혀 얼어 버린 펭귄도 있다. 이름만 화려한 황제펭귄의 일생이다.

황제펭귄의 놀라운 사랑과 협동력은 허들링에서 잘 나타난다. 발에 알을 품은 수컷들은 몸을 맞대어 밀집된 커다란 똬리를 튼다. 먼저 몸으로 방풍벽을 친 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모아 바깥보다 10도는 높은 따뜻한 내부의 공간을 만든다. 하나하나의 체열로 만들어 낸 동료애인 필리아의 생명공간이다. 하지만 바깥 외벽을 친 펭귄들은 영하 50도의 추위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펭귄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밖에 있던 펭귄이 안으로, 안에 있던 펭귄들이 밖으로 조금씩 무리 전체가 소용돌이처럼 돌면서 교대를 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자발적 공동체. 남극의 블리자드. 그 냉혹한 추위가 오히려 서로의 생명을 부축하고 공감하고 포옹하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준 것이다. 남극 펭귄들 세상엔 너와 나가 따로 없다. 모두가 하나되어 필리아의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이 영상을 보고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받았다. 보고 배워야할 교훈도 많다고 느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주요 내용을 길게 소개한 이유다. 영상에서 처음 알게 된 펭귄밀크는 눈물겨운 황제펭귄의 자식사랑 그 자체였다. 자기 목숨보다 자식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 인간의 참된 아버지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여겼다.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며 보호하는 펭귄의 허들링을 보면서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 사는 행복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힘은 서로에 대한 배려, 신뢰, 믿음, 사랑으로 이루어짐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도 서로 함께 더불어 사는 ‘허들링’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공동체가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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