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에 이러한 게송이 있다. ‘그는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하여 증오를 품고 있으면, 증오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는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해도 증오를 품지 않으면 증오는 없어진다.’
우리는 남이 내게 부당한 행위를 할 때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이 끝나도 분노 때문에 계속해서 고통을 겪는다. 분노를 마음에 품지 않는 것이 나의 고통을 줄이는 지혜다. 불교에서는 인과의 법칙을 말한다. 인과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다. 갑이 을에게 고통을 준다. 을이 분노하고 마음에 간직한다. 다음에 (생이 바뀌어 알지 못해도 그 마음이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으므로) 을이 갑에게 고통을 준다. 그리고 다시 갑이 을에게 보복한다. 이 악순환은 끝이 없다. 누군가 분노를 간직하지 않고 상대를 용서할 때까지. 그러므로 용서가 실제로는 분노보다 서로에게 유익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한 국가가 ‘자제’와 ‘용서’와 ‘이해’를 통해서 합리적인 지혜로 어려운 문제를 극복한 사실을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읽고 무척 감명을 받았다. 저자인 아잔 브람 스님이 태국에서 수행할 때에 직접 지켜본 이야기다.
1970년대 중반에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가 공산화되면서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은 태국이 곧 공산국가가 되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수많은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태국 북동부의 정글로 모여들었고 그 지역 주민들도 그들을 도왔다. 그 때 태국 정부는 세 가지 해결책을 세웠다고 한다.
첫 번째는 ‘자제’였다. 공산주의자들의 활동 기지가 있는 곳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공격하지 않았다.
둘째는 ‘용서’였다. 수차례에 걸쳐 무조건적인 사면이 실시되었고 반란군 중의 누군가가 전향하기를 원하면 단순히 무기를 버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았다. 한 마을 근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매복해 있다가 태국 군인들이 탄 지프차 한 대를 공격해서 전원이 사망했는데도 공산군에 동조한 그 마을 젊은이들을 자유롭게 두었다고 한다.
세 번째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다. 새 도로를 건설하고 길을 다시 포장하고 저수지와 관개수로들을 건설하고 외딴 마을까지 전기를 가설하고 학교와 진료소를 세워서 가난한 마을들의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게 했다.
결국 정부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합리적인 대처로 그들의 분노는 약해지고 그 지역의 마을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지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정부에서는 공산주의 지도자들 중에서 능력에 따라 정부 요직에 등용하며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다고 한다.
극단적인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오늘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실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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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 스님/ 한마음선원 뉴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