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도 잘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한자까지 가르쳐요?” 바로 내 아이가 어렸을 때 한자교재를 보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로 부터 종종 받던 질문이다.
내 아이는 대여섯살 정도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매년 한국에 나갈 때마다 한자교재 한권 정도를 공부했다. 물론 어린이용 교재들이기 때문에 책 한 권에 10자내지 20자 정도의 기초 한자들만 들어있었다. 즉 아이는 천자문은 커녕 100자도 못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왜 나는 한국어도 서툰 아이에게 한자를 가르쳤을까?
우리나라에 한자가 전해져온 것은 고조선 말 즈음이며, 삼국시대에서부터는 문서에 한자사용이 널리 사용되었다. 심지어 세종대왕이후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도, “문자”를 안다는 것은 한문을 쓸 줄 안다는 뜻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에는 한글전용 정책이 추진되어 한자 교육이 일시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이렇게 긴 역사 속에서 언어 문화적으로 깊숙이 자리잡은 한자와 한문이 갑자기 없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결국 지금도 학교에서는 한자와 한문교육이 여러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한자는 우리의 역사 속에 깊이 자리잡은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또한 언어적으로 한자와 한자어가 미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크다. 쉽게 말하면, 한국어에 사용되는 단어들은 한자와 한자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의 전체 44만여 개의 주표제어 가운데 한자어는 57%정도를 차지하며, 여기에 한자어와 고유어가 결합하여 생긴 복합어를 더하면 그 비율이 더 올라간다. 특히 이런 한자는 뜻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로 치면 어원 (root word)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어원부터 먼저 가르칠 필요는 없다. 많은 단어들을 익히다 보면 저절로 말의 근원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이 어원을 알기시작하면 당연히 단어에 대한 이해력과 습득력이 높아진다. 한국말을 배울 때도 같은 원리이다. 한국어 단어에 널리 쓰이는 기초한자, 나아가서는 기본한자를 알게 되면 한국어 단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 미국에 있는 학생들은 언제부터 한자를 접하는 것이 좋을까? 한자, 특히 기초한자들은 상형문자들이 많다. 이는 한자를 그림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한국에는 우수한 어린이용 교재들이 상당히 많아서 내 아이도 어렸을 때부터 아동 발달단계에 맞는 한자 학습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외국인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동음이의어들도 한자에 대한 기본 소양이 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학생들이 어렸을 때 배운 기초한자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한국 언어와 문화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하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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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현/머시 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