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담 쌓기

2019-02-04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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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특이한 풍경은 담이다. 집집마다 담을 쌓는다. 시골의 싸리담은 풍치라도 있지만 도시의 담들은 보기 사납다. 담을 쌓는 이유가 미관을 위해서가 아니고 도둑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높고 튼튼하게 쌓는다. 담 위에 유리 조각을 꽂기도 하고 그 위에 철조망까지 두른 집도 있다. 시멘트 담, 벽돌담, 등 여러 가지다. 미국은 정원에 잔디를 가꾸어 주변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에 담이 있으면 오히려 풍치를 해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담을 쌓겠다고 선언하고, 예산을 의회에 청구하였는데 거부당하자 연방정부 업무폐쇄(Gov ernment Shutdown)란 강수를 썼다. 이번 연방정부 업무폐쇄는 지난 해 12월 22일 부터 시작되었다. 정부가 업무를 중단한다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경험이 없는 일이어서 낯선 용어이다. 미국도 정부 폐쇄가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이번이 16년 만에 처음이다. 멕시코 경계에 담을 쌓는 비용이 57억 달러($ 5.7 Billion)나 들기 때문에 의회는 그런 엄청난 비용을 드려 국경에 담을 쌓는다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연방정부 업무폐쇄는 근래 몇 차례 있었다. 1995년과 2013년에도 정부 업무를 폐쇄하였었는데 이런 일이 나라의 버릇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인원은 80만 명이나 된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루만 쉬어도 나라 살림에 지장이 많이 생긴다. 이번 정부 폐쇄는 이미 한 달이 지나 폐쇄 역사를 갱신하였다. 대개의 경우는 사흘을 넘기지 않았다.

담을 쌓는다고 외국인의 불법입국을 막을 수는 없다. 배를 타고 와서 상륙하는 소위 ‘점프’(Jump)도 있고 다른 나라를 거쳐 들어오기도 한다. 불법입국 단속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한국처럼 주민등록증을 발부하고 전 국민을 통반(洞班) 조직으로 묶어 통제하기 전에는 안 될 일이다.


일본은 조선을 통치할 때 전국을 작은 단위로 조직하고 이를 ‘도나리 구미’(隣組)라 칭하였다. 역대 군사정권은 이 ‘도나리 구미‘의 한국판으로서 ’애국반‘을 조직하고 통치수단으로 삼았다. 이런 조직은 국민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타국에서 들어온 이민들이 아닌가? 이민들이 미국을 세웠고, 이민들이 미국을 세계의 최강국으로 육성하였다. 아메리카 땅의 주인으로 말하자면 아메리칸 인디언 뿐이다.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미국의 자랑은 폭 넓은 이민정책이었다. 전 세계 인종이 모두 모여 함께 사는 곳이 미국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과 같은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섞여 사는 나라가 없다. 그러니까 본래 ‘미국인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섞여 사는 것이 미국의 특색이다. 담 쌓기는 미국 정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쁜 정책이다.

서울에 가면 마장동 ‘꽃담 동네’에 꼭 가보고 싶다.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온 마을의 담에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중충하였던 동네가 관광코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마을에 그림도 잘 그리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멋진 친구들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칭찬할 아이디어이다. 기왕 담을 만들려면 ‘그림담’도 좋은 생각이다.
중국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은 2,700킬로에 달하는 웅장한 담인데 북방 제국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성벽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담은 아니고 성이다. 요즘 침입은 하늘과 바다로도 들어오기 때문에 나라 방어에 담 쌓기는 의미가 없다. 멕시코 사이의 담은 담 밑을 파고 들어오는 두더지족도 막기 위하여 지하까지 시멘트로 막는다고 하니 이런 일 벌리다가 대미국이 국제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나?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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