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도 이제 내 신자

2019-02-01 (금)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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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당에 찾아오는 존이라는 흑인 홈레스가 있다. 가끔 성당 안으로 불쑥불쑥 들어와 밤늦게 미팅이나 레지오를 하고 있는 신자들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아무한테나 돈을 뜯어 가서 내가 참 미워하고 있는 판이었다. 가끔 운전을 하다가 그가 다른 교회에서 나오는 것도 봤으니 아마 이 지역을 다 돌아다니며 돈을 버는 모양이다.

한동안 그가 안 보여서 속이 다 시원했는데 오랜만에 나타난 그는 잘 걷지도 못하고 비쩍 말라 있는 것이다. 아, 이 자식 큰 병이 걸렸나보다, 하며 걱정이 은근히 됐다. 그러나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도 금새 사라지고, 곧 돈을 뜯으러 다니는 그 놈이 다시 심사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번은 미사 때 점잖게 앉아 있길래 하도 냄새나고 지저분해서 “야, 너 여기서 나가” “경찰을 부른다” 고 윽박질렀다. 그렇게 쫓아 내놓고 미사를 하는데 하필 그날 복음이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루까 10:27) 가 아닌가? 복음을 읽고 입에 침도 안바르고 강론을 하면서 속으로 마구 양심이 찔려 왔다. 혹시 내가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쫓아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영성체 때에 성체까지 받아 모신다고 앞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곧 성혈도 받아 모시겠다고 잔을 받아 드는데 이건 미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신부가 잔을 안줄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 무슨 병이 있는지 그 지저분한 입하며 이빨은 몇 개가 없고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잔을 받아 들고 성혈을 모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잔을 또 내가 마저 받아 모셔야 하니 아, 난 죽겠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존이 있을 때면 절대로 성잔을 안 내놓았다.


한 번은 미사 중 헌금 시간에 존이 비틀비틀 나오더니 봉헌이라고 얼마간의 돈을 바구니에 넣는 것이 아닌가. 제대 위에 앉아있는 나는 그것을 보고 한마디로 감동한 것이다. 야, 이놈이! 뜯어 가기만 하더니 이제는 내놓을 줄도 아는구나! 너 이제부터는 내 신자다. 너 이제부터 여기 올 자격이 있어. 감동한 나머지 나는 미사 후 10달러를 그의 손에 쥐어 보냈는데, 존은 또 다른 이에게도 열심히 돈을 뜯어가지고 콧물을 흥흥 맡아 제끼며 떠났다.

감동한 것은 수녀님도 마찬가지. 수녀님 말씀이 25센트짜리 바구니에 넣고 몇십 달러 벌어갔다고 하지만, 어쨋든 명실공히 너도 이제 내 신자다.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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